본문 바로가기
l Simple but Serious

두 달만에 남겨보는 첫 이직의 소회

by Mellowee 2017. 7. 6.



비오는 날의 궂은 퇴근길


저녁 6시 27분. 퇴근길 버스정류장에는 비가 포슬 포슬 내렸다. 날씨 탓에 우산을 둘러쓴 사람들은 평소 보다 무리지어 보여서 버스 정류장이 인파를 감당하기 힘든 듯 해 보였다. 설마 내가 타는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오자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렸다.  


차마 버스를 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너도 나도 버스를 놓칠 새라 앞지르는 모습들이 너무 전투적이어서 말이다.가까스로 좀비 떼들을 피해 부산행을 타고 이 공포의 도시, 서울을 탈출하려는 무고한 몸짓 같았다. 포기가 빠른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버스를 보냈다. 다음 버스는 2분 뒤 도착인데, 급할 것도 없잖아. 


퇴근길이 조금 불편해진 데에는 갑작스러운 비소식 탓만은 아니었다. 실은 얼마 전에 직장을 옮겼다. 생애 첫 이직이었다. 덕분에 이전 직장이 있던 가로수길에서 벗어나 현 직장이 있는 삼성역 부근으로 생활 반경이 넓어졌다. 헌데 출퇴근 길이 말썽이다. 교통이 험해서, 마을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또 다시 초록 버스도 타야한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보기 보다 파워 긍정'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나는 오늘도 웃으며 출근하고 평온하게 퇴근하고 있다. 새로운 직장에 다닌지도 벌써 만 두달. 아직은 적당히 낯선 업무도, 이렇게 마냥 험하고 길기만 한 출퇴근 길도 괜찮은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모든 게 다 내가 지난날 그토록 '간절히 갖고 싶었던 무언가'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직을 왜 했더라


브랜드 캠페인 기획자인 나는, 광고 회사에서 콘텐츠 기획자이자 카피라이터로 경력을 시작했다. 디지털 영상, 소셜미디어 운영, TV 광고 할 것 없이 3년 수 개월 동안 X처럼 일 했고, 나름 고과를 인정 받으며 그리고 아주 자주 야근을 종용 받으며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게 있었다. 3년을 기점으로 도약하고 싶다는 간절한 탈출의 의지 말이다. 사실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직원들은 이직이 잦긴 하다. 워낙 오래 다니면 다닐 수록 업무가 '연차가 높은 사원'에게 몰리기 마련이어서 어느 시점이 되면 대개 번아웃이나 매너리즘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이유로 많은 광고 업계 동료들은 업무 환경을 바꾸는 식으로 리프레시를 한다. 이직도 다른 업종에 비해 수월하다는 점도 여기에 한 몫 한다. 물론 이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조직 운영의 정체를 겪는 회사 탓이 크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직장을 옮기려 했다. 경력직으로 명함을 내밀어 볼만한 3년차 쯤이 적당하지 싶었다. 애초에 입사할 때부터 나의 첫직장은 Best 옵션은 아니었기에, 소위 커리어 점프에 대한 야망도 있었다. 발칙하지만 그 생각은 입사 후 1년이 되었을 정도에 이미 세운 빅 픽쳐였다. 결국 직장을 다니는 동안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이직에 대한 위시 리스트를 만들었고, 고쳐나갔다. 틈틈이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면접도 봐가면서 목표에 대한 이상향을 빼거나 더하기도 했다. 물론, 그 상위에는 여전히 브랜드 매니지먼트, 광고, 캠페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부분에 대한 의심은 크게 없었다. 


다만 새로운 직장에 대해 내가 원했던 것은 분명했다. 바로 광고 기획자로서 다뤄볼 수 있는 캠페인의 규모의 확장이나 형태의 다양성이었다. 무엇보다 +글로벌리티(Globality!)를 획득하길 바랐다. 글로벌 브랜드와 함께 큰 규모의 글로벌 캠페인을 집행하거나, 오피스 자체가 외국어를 쓰는 근무 환경이거나 하는 식 말이다. 해외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


그래서 그런지 마침 기회가 찾아왔을 땐 오히려 빨리 마음을 정할 수 있던 것 같다. 그게 바로 2017년 4월 초. 이직 조건에 부합하는 한 회사의 면접을 아주 캐주얼하게 보고, 참 일사천리로 진행된 일정 끝에 합격 발표가 났다. 내가 뭘 원하는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일까? 갑작스럽게 결정 난 합격발표를 앞에 두고, 별달리 따지거나 재지 않고 입사를 결정했던 기억이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외국계 종합광고대행사에서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버킷리스트의 민낯


그리고 이제 두 달. 버킷리스트의 민낯은 어떻냐고? 말하기 이른 감은 있지만, 업무에 있어서 글로벌리티 만큼은 더 느껴진다. 가끔 영어로 문서를 작업하거나 통역을 대동해서 광고주 미팅을 하는 일도 겪을 수 있고, 사내에 외국어를 잘 쓰는 동료들도 상당수다. 


다만 이 모든 게 100% 팩트 임에도 사실 체감하는 전과 다른 차이는 그리 크지는 않다. 외국계 광고주와 일을 하긴 하지만 그들은 어쨌든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브랜드 캠페인을 집행하기 때문이다. 현직장에서 AE로 일하는 나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한국 시장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한다. 큰 그림의 Global Campaign 보다는 Localization을 컨트롤하는 일이 다수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Global Brand Campaign Management는 아닐지도 모른다.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하게 하는 환경은 마음에 든다고 할까?


우리의 현실이란 늘, 위시리스트에서 내가 빼먹거나 간과했던 것들을 참 잘도 일깨워 주지 않던가? 결론적으로는 이직도 마찬가지 였다. 예를들어 지금 출퇴근 시간이 그중 하나다. 왕복 3시간 정도. 이 얘기를 할 때마다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곤 하니, 도대체 나는 왜 여기 면접을 볼 때 통근 시간은 고려 사항에 두지 않았나 미스테리다. (왜 그랬어...)


애초에 이직을 결심하고 이직처의 조건이 되는 사항들을 작성할 때에 '왕복 2시간 이내 = 연봉 15프로 인상 필수 & 왕복 3시간 이내 = 연봉 30프로 인상 필수' 라고 다짐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꼼꼼하고 신중한 캐릭터를 역임하고 있는 자로서, 의외로 숨길 수 없는 나이브함은 이럴 때 자각하게 되고야 만다.

 


성취, 그 후의 바른 자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모든 변화를 불평하지는 않는다. 사실 버킷리스트의 민낯의 가장 핵심적인 자리엔 '감사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그것이 동반하는 불편함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것은 버킷리스트를 이뤄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진짜?) 신께서는 겸손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원하는 것을 이뤄줘도 다음에 또 슬퍼하거나 화를 낼까봐, 다른 꿈을 또 이뤄주는 수고는 하지 않으시거든. 


난 기억한다. 혹시라도 지금 가진 나의 이 모든 걸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갖지 못할까봐 전전긍긍 앓곤 했던 작년의 숱한 밤들을. 그 시간들은 어찌나 잔인했던지. 불안에 휩싸인 밤은 왕복 3시간의 질척거리는 출퇴근 길보다, 수많은 문서 앞에 쓸 데 없이 긴장하고야 마는 이직자의 낯설음 보다 난해하고 고단했다. 그런 의미로 요즘의 일상은 그저 '여기까지 와서 참 다행이야'라고 마무리 짓는 하루 하루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원하는 것을 이뤄냈다는 성취감 덕분은 아닐까. 바로 그 얄팍한 보람이 오늘도 고단한 하루 앞에 안도감을 선물한다. 그리고 이것은 나로 하여금 분명한 사실을 믿게 만든다. 매일 매일 하루 끝에는 선물 같은 퇴근 시간이 찾아와, 우리를 집 앞 현관문에 '안전히' 다다르게 할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해내고 있다'는 기분이 주는 삶의 여유다.


그러므로 버킷리스트는 반드시 이뤄야 한다. 수시로 쓰고, 더하고, 고치고, 설사 늦어지더라도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이직후. #적응중." 앞으로 더 많은 버킷리스트를 이뤄가겠다는 마음으로 평범한 출퇴근을 즐기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