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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Couch Surfing in Europe

나만의 카우치서핑 즐기기 법칙

by Mellowee 2016. 12. 20.



Ingrid's place


My bed in Tromsø



여행길에서의 나는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낯선 사람들에게 쉽게 호의를 베풀고, 그들과 정말 빠른 시간 안에 수다스러워지고, 새로운 여정에 뛰어들기를 주저 하지 않는다. 트롬쇠에서 둘째날에는 독일 대학생을 만나 잔뜩 수다를 떨면서 시내의 케이블카를 보러 갔다. 노르웨이에 교환학생을 오게 된 이후로, 낯선 사람과 웃고 떠드는 일은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일상에서의 나는 다르다. 평균보다 낮은 붙임성, 평균보다 높은 낯가림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알아가고 가까워질 때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곁을 내어준다. 사람을 가랑비에 옷 젖는듯,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그렇다. 그래서 마음 먹은 배려심이 아니라, 잘 보이려는 친절이 아니라, 환심을 사려는 호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사귀고 싶다. 혹여나 그것이 기다림과 어려움을 낳는다 해도 그 모습 그대로 알아가길 바라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의 한 구절을 참 좋아했다. 처음에는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서 조금씩 다가와 앉으라는 말을 여우가 했다. 그리고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자기가 곁눈질로 보는 동안, 말이란 오해의 원천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사람을 사귀고 알아가는 과정이 결의에 가득찬 '단합대회'가 아니라 일상에 녹아든 '습관' 같은 것이기를 바랐다.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국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무엇을 알든지 상관없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만약 너가 친구를 원한다면, 날 길들여!" 

"뭘 해야하지?" 어린왕자가 말했다. 

"너는 매우 참을성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너는 우선 내게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풀숲에. 

난 너를 곁눈질로 볼거고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언어는 오해들의 근원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매일 매일, 너는 조금씩 더 가까운 곳에 앉을 수 있을거야..." 


생텍쥐베리 <어린왕자> 



그런데 카우치서핑을 해보니 도통 그럴 시간이 없다. 호스트와의 만남은 하룻밤일수도, 이틀일 수도, 한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길고 짧은 여행을 하면서, 사람을 사귀는 것에 관한 다른 생각을 하나 더 하게 되었다. 어떤 순간에는, 상대방의 삶의 일부러 뛰어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2박 3일 동안 머물러야 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격의 없이 사랑이나 진로 고민 따위에 대한 가치관을 늘어놓고, 단지 같은 기차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알 수 없는 행운을 빌어주는 일. 그 짧은 순간의 증발할 열정과 섣부르지만 편견없는 친화력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게 되었다. 존중하게 되었다. 어떤 사귐에는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서 조금씩 다가와 앉는 길들임의 시간을 생략할 수 있어야 했다. 여행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오로라를 보고 잉그리드의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상하게도 마치 집으로 귀가하는 느낌이었다. 타지에서 돌아갈 내 집처럼, 나의 하루를 기다려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카우치서핑의 매력인 듯하다. 오로라를 봐서 그런지, 눈 길 따라 뒤뚱뒤뚱 걷는 것도 괜히 낭만적인 것 같은 밤. 불이 다 꺼져서 깜깜한 한 밤중이라 온통 고요해진 시내도, 괜히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이 생긴 것처럼 장난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트롬쇠에서 내가 꼭 하기로 했던 일들은 끝나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잉그리드에게 꼭 해주고 싶은 게 있었다.



카우치서핑

즐기기 법칙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있는 1년 동안, 여행을 할 때는 무조건 카우치서핑을 하자! 라고 카우치서핑 도전 프로젝트를 결심한 이후, 나만의 법칙을 하나 세웠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가정식을 선물하는 것. 내가 외국 친구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들의 일상을 체험하듯이, 그들 또한 나의 방문으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뭐가 좋을 지 생각했다.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것은 음식이 딱이었다. 자신있었다. 이미 오슬로에서 기숙사 홈파티에서 쏠쏠한 실력을 발휘했던 나다. 


그런데 잉그리드의 집에 가기 전 한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알고보니 잉그리드는 '엄격한' 채식주의자 (Vegan) 였던 것이다. Vegan은 계란도 먹지 않는다. 생선도 먹지 않는다. 게다가 잉그리드는 건강 상의 문제로 설탕도 먹지 않는다. 아니 이럴 수가! 사실 내가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할 때 비장의 무기로 내 놓는 것이 베이컨으로 돼지고기를 대체한 제육 볶음과 소불고기다. 그런데 그녀가 채식주의자라니!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 중에 한국의 맛을 알릴 만한 음식이 무엇이더라? 부침개? 녹두전? 고기가 빠진 잡채? 하지만 오슬로 아시안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부침 가루는 너무 비쌌다. 게다가 밀가루로 만드는 부침개는 맛이 없는데? 그동안 한국 음식이 굉장히 채소 위주의 식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요리로 대접할 만한 메뉴 중에서는 채소만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드물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트롬쇠에 가기 전에, 트롬쇠에 대한 정보를 물색하는 것보다 잉그리드에게 소개할 만한 '채식주의자를 위한' 한국 음식을 검색하는 데 훨씬 열정적이었다. 이것 저것 음식 레시피를 찾다보니 정말 많은 한국 음식들이 있었지만 내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오슬로였다.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최적의 메뉴를 물색하기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낯선 나의 모습 그러고보면 누군가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일에 이런 주의와 배려를 기울인 적이 있던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 첫 만남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을 기분좋게 할만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본 것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내게는 그게 첫경험이 아닌가 한다. 늘 한발짝 멀리서 지켜보곤 했다. 일부러 베푸는 호의에는 편견을 갖기도 하고, 과장된 친절에대해서 불편함을 내세우며 도망치느라 바빴다. 그래서 스스로도 늘 뻣뻣했다. 아마 사랑에 빠지면 종종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 사람이 원하는 생일 선물을 산다거나, 데이트 장소를 물색한다거나. 하지만 그것도 사랑에 빠진 스스로의 기쁨 만든 행동이었을 뿐. 외국인 친구에게 대접할, '오로지 채소로만 만들어진 음식'을 검색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진 것이 아니라 단지 타인과의 첫 만남을 준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다른' 상대방을 연구하는 모습이었다. 


고민의 결과는 쪽파 무침과 호박 나물이었다. 여러 장점으로 인해 당당히 메인 메뉴로 간택되었다. 첫째, 오슬로에서도 아시안 마켓에서 쪽파와 호박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둘째, 참기름만 들고 가면 다른 요리 재료를 더 무겁게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 셋째, 파 무침의 비주얼은 쪽파의 유연한 커브와 그것을 야무지게 묶은 매듭으로 상당히 이국적인 모습을 자랑한다. 카우치를 내어주고 새로운 문화 교류를 환영할 채식주의자 이방인들에게 소불고기나 제육볶음 만큼이나 맛 좋은 음식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나의 트롬쇠행 배낭에는 두꺼운 스웨터와 카메라와 함께 아시안 마켓에서 산 한 소량의 쪽파와 애호박 하나가 들어가게 됐다. 참기름도 함께.


어쨌든 둘째날 오로라를 보고 잉그리드의 집에 도착하니 잉그리드는 옆집에 잠시 볼 일을 보러 가고 크리스틴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었다. 잉그리드의 룸메이트인 토룬만 부엌에 나와 발렌타인 데이라서 받은 듯한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토룬에게 오로라 본 것을 잔뜩 자랑했더니 무뚝뚝하게도 "lucky, you are." 라고 했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난 행운아지. 후라이팬을 써도 되냐고 묻자 흔쾌히 위치를 알려준다. 내 집처럼 잉그리드의 주방에서 적절한 팬을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물을 끓여서 쪽파를 데칠만한 냄비도 찾았다. 이제는 남의 집 선반에서 식기 도구 찾기도 능숙하네? 한국의 엄마가 이 모습을 보면 기겁을 했을 거다. 세상에 내가 쪽파 무침을 만들다니! 떡볶이도 아니고, 라면도 아니고, 쪽파 무침을 만들다니! 


일단 더운 물에 데친 쪽파의 물기를 짜서 참기름에 버무린 뒤 돌돌 말아서 마지막 중간 매듭으로 맵시를 살렸다. 마침 그때 잉그리드가 집에 들어왔다. 나는 그 사이 새 하얀 접시를 꺼내서 음식 담을 준비를 했다.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잔뜩 기대에 부푼 잉그리드. 그리고 하얀 접시 가운데에 호박 나물을 올리고 가장자리에는 앙증맞은 쪽파 무침들을 옹기종기 둘렀다. 완.성! 게임에 빠져있는 크리스틴을 불러서 식탁에 자리를 차지 했다. 아 이거, 선무당 쪽파 무침으로 나라 망신 시키면 안되는 데 큰 일이다. 일단 맛이 없다고 하면 국익을 위해서 나의 요리 실력의 비루함을 고백하고 동정심을 일으킬 생각이다.


고백한다 호박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두 사람은 호박 나물과 쪽파 무침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했다. 특히 쪽파 무침에 푹 빠진 잉그리드는 음식 이름을 재차 물으며 노르웨이로 레시피를 그대로 적어가며 찬사를 뱉었다. 쪽파 무침의 신기한 모양새에 신기해했던 두사람은 그 고소한 맛에 반한 거다. 그런데 "so great, so tasty" 를 연발하던 잉그리드는 먹는 것을 멈추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친구 크리스틴이 이렇게 말 없이 무언가의 접시를 비우는 것은 처음 봤다는 거다. 무심한 트롬쇠 남자 크리스틴은 잉그리드가 놀리는데도 아랑곳 없이 쪽파 무침을 단숨에 먹어 치웠다.과묵하고 무뚝뚝한 크리스틴의 말없는 식사는 나름의 찬사였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쪽파 무침으로 배를 채우고 이제 마지막 밤을 준비할 차례다. 이른 아침에 집을 떠나는 나에게는 일종의 이별 준비이기도 했다. 잠들기 전 일단 그녀의 집에서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설탕을 먹을 수 있는 토룬을 위해서는, 아시안 마켓에서 데려온 쌀 과자를 남겼다. 그녀의 카우치 테이블에는 약 3일 동안 내가 자유롭게 썼던 그녀의 집의 열쇠를 내려 놓으니 오래 살던 집에서 이사라도 가는 기분이다. 크리스틴에게 잠시 빌린 USB 케이블도 함께 돌려준다. 카우치 서핑을 마감하는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잉그리드가 내게 줄 선물이 있다고 했다. 


"Didn't you say that you need Norwegian socks? " 


손 뜨개 양말이었다. 분홍색 빛깔이 인상적인 무지개 양말. 헌데 내가 놀란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사실 그것은 내가 오로라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서고 들어올 때마다 그녀가 하루 종일 붙잡고 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집을 들어오고 나설 때마다 그 양말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 양말을 정성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오랜 친구이거나, 그 친구의 자녀를 위해서. 


잉그리드가 내 선물을 만드는 동안 나는 고양이 따라잡기에 열중해 있었다고 한다



정말 나를 위해서 만든 거야? 하루종일? 세상에! 난 그것도 모르고! 사실 지난 이틀동안 몇번이나 눈치 없는 질문은 했는지 모른다. 


"잉그리드, 맨날 뭘 그렇게 만드는 거야? 예쁘다~" 

"양말을 만들고 있어. 색깔이 예쁘니?" 

"응. 조카한테 선물 하는 거니? (내 딴에는 사이즈가 너무 작다고 생각해서)" 


"하하. 이게 어린 아이들 사이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때도 사실 잘 몰랐다. 처음 만난 친구가 처음 만난 손님을 위해서 양말을 직접 짜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녀는 이제야 고백한다.


"그동안 널 위해서 만든 거야. 색깔이 마음에 드니? 

내가 너의 필통을 봤는데 고양이 그림을 봤거든. 그래서 이런 색깔을 좋아할 것 같았어."


내 필통의 고양이 그림이란, 미피 펜을 말하는 거다. (미피는 토끼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미피팬은 빨간 색이었기 때문에 보기에 선홍색이 칠해져 있고 그 사이로 노란 미피 그림이 가득하다. 내가 잉그리드가 좋아할만한 채식 음식을 고민했듯이 상대방이 어떤 것을 좋아할 지 고민한 것은 잉그리드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내 발 사이즈를 물어봤던가? 아니다. 사려 깊은 그녀는 무심코 내가 신고있던 양말과 사이즈를 재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추운 겨울, 실내에서 삭스 워머로 쓰기에 적절할만한 두툼한 털실이 부드러웠다.


사실 잉그리드는 3일 내내 그런 말을 자주했었다. 왠지 모르게 내가 자기의 Sister 같다는 말. 나의 어떤 면이 그녀에게 그런 정서를 선사했을지는 알 수 없다. 듣기에 싫지는 않은 말이다. 나는 그 양말을 정말 소중하게 접어서 가방에 챙겼다. 발에 신고 뛰어다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선물이었다. (* 실내용 양말은 지금도 집에 소중하게 보관되어있다. 몇해가 지나자 양말에 이 양말은 올이 나가기 시작했고 곧 풀어졌다. 하지만 만능 손 우리 엄마가 다시 레인보우 손 장갑으로 만들어주었다.)







여행의 끝

여행의 기억



첫번째 카우치서핑이 무사히 끝났다. 그것은 노르웨이의 북극권 마을의 눈 덮힌 마을의 소녀가 한국말로 '사.랑.해'라고 말하며 남자친구에게 입맞춤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난생 처음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한국의 쪽파라는 채소 요리를, 반드시 잘 하고 싶어지는 일. 그러니까 낯선 것을 사랑하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노르웨이에 있는 학교로 돌아와서, 그리고 한국에서 직장인이 되고 나서, 여전히 일상은 카우치서핑 같진 않다. 나의 타고난 사교성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난 이제 기다릴 줄도 알고,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줄도 안다. 아마도 내가 그날의 카우치서핑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일상에서 누구를 사귀든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다시 배우려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 여행이 끝난 뒤, 오슬로에 돌아오자 잉그리드가 페이스북 채팅창으로 자랑거리를 하나 보여줬던 것이 생각이 난다. 내가 트롬쇠를 떠나자 마자 잉그리드가 스스로 쪽파 무침을 만들어 봤다며 자랑을 했다. 그녀가 쪽파 무침을 만든 이야기는 그녀의 개인 블로그에 내가 알려준 레시피와 함께 올라와 있었다. 우리나라의 참기름과는 그 맛이 다르지만 Sesame oil 도 구하기 쉬운 재료였고 쪽파도 아시안 마켓에서 쉽게 구했다고 한다. 어지간히 그 음식이 맛있었나 보네. 그녀의 한국 음식 아래 위로 노르웨이어로가 꼬불꼬불하니 가득. 보기에 안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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