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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Couch Surfing in Europe

젊은 날에 만난 노르웨이 오로라

by Mellowee 2016. 12. 20.



저녁 어스름


Sunset in Norway




돌아보면

전부 다 오로라 헌팅 같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킨 만큼 달성하기 어려운 일들이기 마련이고, 그 어려운 일들은 대개 운의 개입도 많이 받는다. 게다가 그런 일들이란 하고 싶은 다른 것을 해볼 자유, 연습의 괴로움처럼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고 투자하게 한다. 선망이 되는 희소성만큼이나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또 어떠한가. 나는 20대 내내 이 네 문장에 대해서 아주 곧이 배워 온 것만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한, 스물세 살에 내가 떠났던 오로라 여행도 비슷했다. 하늘 위의 초록빛 물결을 목도하는 꿈같은 오로라 헌팅은 세계인들의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항상 랭크된다. 안타깝게도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보기로 결심했다면, 먼 북극권 도시로 이동을 해야 한다. 비싼 물가에 비해 볼거리가 많지 않은 겨울의 나라로 말이다. 그곳에서도 출몰 자체는 자연이 허락하는 한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오로라가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라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는 일을 마다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오로라의 비싼 신비주의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매료시켰다. 저건 꼭 봐야 돼! 2011년, 그렇게 오로라를 보기 위해 트롬쇠 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박 3일 트롬쇠 여행에서 아무래도 오로라가 여행의 주인공이다 보니, 트롬쇠 여행은 비로소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본 게임이 시작되었다. 트롬쇠에 도착한 다음날 시내 관광을 마친 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세상은 이미 깜깜했다. 이제 오로라 투어의 집합 장소로 가면 됐다. 나는 시내에 있는 관광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가장 저렴한 오로라 투어를 신청해두었다. 


사실 나는 시내에서 이미 오로라를 본 뒤이긴 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잉그리드의 집에 도착하던 날 밤 잠깐 마실을 나갔다가 우연히 깜짝 등장한 초록빛의 오로라를 본 것이다.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멍해지고 말았다. 트롬쇠에 처음 온 나를 위한 깜짝쇼 같았다. 그러니 사람이 간사해지더라. 트롬쇠에 오기 전만 하더라도 새끼손톱만 한 오로라만 봐도 배부른 마음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나는 더 욕심이 났다. 이렇게 손바닥만 한 오로라를 잠깐 봐도 황홀한데 더 크고 선명한 오로라를 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오로라 투어

신청하기 


오로라를 보기 위해 투어를 신청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더 큰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오로라 (Northern Lights)는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의 일부가 대기로 진입하면서 생기는 빛이라고 한다. 태양의 플라스마는 원래 자기장 때문에 자기권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극지방은 이 자기장이 상대적으로 얇다. 얇은 층으로 스며든 태양의 플라스마가 공기 분자와 반응하며 오묘한 빛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오로라는 인공조명이 없는 외딴 지역에서 관측해야 한다. 빛의 방해가 없는 곳에서 오롯이 오로라만을 볼 수 있다.




트롬쇠 관광 사이트 제공(http://visittromso.no)




그렇다면 세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보통 오로라는 그린란드나 알래스카에서 선명하게 관측되고 영국 북부나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에서 맑은 밤하늘에서 관측 가능하다. 노르웨이에서는 로포텐 (Lofoten)이나 트롬쇠(Tromsø)가 오로라 관측 도시로 유명하다. 나는 그중에서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트롬쇠에 오게 된 것이다. 마침 노르웨이 교환학생으로 오슬로에서 머물고 있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북유럽 여행이었다.


나는 여기서 스스로에게 딱 두 번의 밤을 오로라 헌팅의 기회로 허락했다. 하지만 투어 비용부터가 만만치 않다. 트롬쇠 같은 경우 시내에 가면 관광안내소와 오로라 투어 신청 사무소가 있다. 오로라 투어 사무소에는 크루즈를 타고 트롬쇠 만을 돌며 배 위에서 오로라를 관측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산속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오로라를 기다리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 놀랍고 황홀한 광경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프로그램도 유명하다. 오로라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서 개 썰매를 타는 것 또한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만 그 가격은 낭만적이진 않다.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노르웨이 물가로 1500 NOK (30만 원)에서 3000 NOK (60만 원) 까지 필요하다. 성인 1명 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유학생 배낭여행 자니까 오로라 전용 기념사진 NO! 개썰매도 아니오! 저녁 포함도 필요 없어!라는 자세로, 일말의 고민 없이 제일 저렴한 기본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교외 숲 속으로, 대형 버스를 이용해 단체로 이동한 뒤 오로라가 나올 때까지 캠프에서 함께 대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생 할인이 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는데도 490 NOK (약 10만 원)이나 줘야 했다. 그래도 노르웨이 물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로라가 하늘에서 툭 튀어나와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투어 환불은 없다. 그래도 23살에 오로라를 보게 되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니지 않나. 가자. 크고 예쁜 오로라를 보기 위해 투어를 가자. 대신 나중에 언젠가는 다시 올 수 있으니까 나의 처지에 맞게 제일 저렴한 투어를 하자. 적절한 타협점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투어 집합 장소였던 트롬쇠의 어느 호텔 앞에서는 벌써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다 같이 단체 버스를 타고 30분쯤? 40분쯤? 이동했을까. 도시의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교외 지역에 다다랐다. 새까맣고 구름 한 점 없는 오늘 밤. 투어 매니저는 오늘은 오로라 관측 가능성이 분명히 높다며 자신만만했다. 그래, 나도 예감이 좋다. 가슴이 간지러웠다.




Northern Lights! 


30분쯤 달렸을까? 산 중턱으로 올라가자 통나무집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오로라 관측용 방한복이 가득했다. 이미 면티에 스웨터에 고어텍스 점퍼에 오리털 점퍼까지 겹쳐 입은 나였지만 오로라를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눈밭에 대기하기에는 부족했다. 투어 업체에서는 눈밭에 굴러도 끄떡없는 방한복을 준비해두고 대여해주고 있었다. 준비된 두터운 방한복을 껴입자 배불뚝이 뚱뚱보가 따로 없다. 오로라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기다리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이렇게 입어야 한다나? 발 시릴 거정 없는 장화까지 신고 나니 눈밭에서 데굴데굴 굴러도 끄떡없을 것 같다. 


눈 밭에 굴러도 끄덕 없다


오로라를 만나기 전 단단한 준비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 중에는 오로라 아래서 개썰매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도 있었다. 눈밭 위에서 썰매에 묶인 개들은 사납게 짖어 댔다. 아직은 오로라가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 한가득 초록색 오로라 아래로 개썰매를 타고 눈밭을 가르는 기분은 당연히 환상적일 거다. 한편으로는 눈밭 위에서 사람들을 끌기 위해 훈련된 개들이 가엾기도 했다. 정신없이 짖어 대는 개들의 아우성에서 어떤 불특정 대상을 향한 울분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했다. 


그 사이 담당 매니저가 Are you guys ready? 하고 묻는다. 오로라를 매주 봤을 법한 이 사람들이 더 신나 보이는 걸?, 물론 나도 신난다. 와, 이제 진짜 오로라를 보러 간다! 일단 우리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오로라를 기다리기 위해 준비된 베이스캠프 티피 텐트에서 추위를 녹였다. 과거 사미족이 살았던 전통집처럼 꾸며진 텐트는 흰 눈이 가득 쌓여서 옛 스칸디나비아의 전통 가옥을 연상케 했다. 실제로 스칸디나비아의 사미족이 살았던 티피(Teepee) 텐트와 같은 모습이다. 티피 캠프 내부는 따뜻한 모닥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왠지 강아지들이 짠하게 느껴지는 개썰매


우리가 대기할 티피 텐트


텐트 내부, 장작이 이글이글 타고 있고 사람들은 몸을 녹인다


텐트 안에서 먹는 초코 케이크


소세지 맛있다 냠냠




하지만 들뜨기만 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오로라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것은 조금 뒤 오로라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말과는 다른 듯했다. 대신 우리는 캠프에 마련된 간식과 모닥불에서 북유럽 사람들의 옛 캠핑 문화를 만끽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오로라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12명. 나와 일본인 여자 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 노르웨이 사람들이었다. 일본인 두 친구는 미카와 요코라는 이름을 가진, 나보다 한 살 많은 동갑내기 친구였다. 하지만 어여쁜 이 두 여자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그러니 이 먼 곳까지 오로라를 보러 온 그들의 사연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한국말은 감사합니다. 를 아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서로의 언어가 다름 아닌 감사의 표시라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밖에 노르웨이 사람들도 모두 이번 여행이 처음으로 오로라를 보는 경험인 것 같았다. 정작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도 트롬쇠에서 오로라를 보는 일은 자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큰 맘을 먹고 결심해야 하는 일이란다. 생각해보면 오슬로에 있었던 나의 노르웨이 친구들도 트롬쇠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2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제주도는 17살 수학여행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녀온 나도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다들 아이처럼 들떠서 캠프를 들락 날락을 여러 번. 어떤 사람은 고급 카메라를 삼각대에 설치하며 오로라를 기다렸다.


투어에서 준비해준 초콜릿 케이크는 달콤했다. 따뜻한 차를 곁들여 먹기 위해 장갑을 벗은 손은 차가운 냉기가 돌았지만 종이컵에 닿을 때마다 나른하게 데워졌다. 소시지를 굽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은 오로라를 보는 것과 상관없이 그저 이 순간을 매우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간식들을 생각하면 투어비는 오히려 저렴한 축이었다. 조각 케이크 하나에 50 크로네는 줘야 살 수 있는 비싼 땅 노르웨이에서, 투어 내내 케이크는 물론 노르웨이 식 소시지 바비큐(Lompe)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소시지를 바비큐를 그릴 판에 구워서 lompe라고 불리는 얇은 빵에 싸 먹는 것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야외에서 즐기는 전통 바비큐다. 고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살았을 통나무 텐트 안에서 간단하게나마 노르웨이 전통 음식을 먹고 있으니 이건 이거 대로 즐겁다. 북유럽 유목민 생활을 체험하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오로라를 보고 싶은 마음이, 신비로운 자연경관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야생미 넘치고 자연미 넘치는 상황에 녹아들고 싶다는 열망이었다면 지금의 투어는 그에 딱 맞는 체험이 분명했다. 모닥불이 바스락바스락 타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오로라! 하고 외치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모락모락 피어났다. 


눈 밭에 담요가 있다



그 사이 나와 일본 친구 두 명은 바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무작정 안에서 기다리는 것도 좋았지만, 오로라가 까만 하늘에 등장한다면 그 모습은 깜짝! 하고 놀라운 일이어서 꼭 놓치고 싶지 않았다. 눈밭에는 오로라를 보기 좋은 장소마다 작은 언덕이 마련되어 있었다. 언덕에는 걸어 다닐 수 있는 통로와 앉을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의 언덕을 점령한 일본인 친구 둘과 나 우리 셋은 벌러덩 누워서 언덕을 전세 냈다. 까만 하늘을 무작정 응시하며 어느 하늘쯤에서 오로라가 등장할지 기대하는 마음은 무척이나 설렜다. 그 사이 또렷하게 빛나는 북극성이며 카시오페이아 별자리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다행히도 우리의 오로라 행운을 인솔해준 투어의 방한복은 위력이 대단했다. 사실 늘 고개를 젖혀도 빌딩 머리가 불쑥 끼어든 서울 하늘이 아쉬웠던 나다. 들뜨고 감사한 마음 때문인지 아무리 눈밭을 뒹굴어도 어떤 추위도 어떤 시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장갑을 잠시 벗을 때만 살을 에는 추위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정말로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 Northern Lights! " 



오로라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캠프 밖을 뛰쳐나왔다.



Dreams come true.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새까만 하늘에서 어떤 초록 빛깔의 물체가 불쑥 나타나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었다. 과연 어느 정도로 클까? 기대했던 마음에 감탄으로 응답하기도 전에, 오로라가 온 하늘을 뒤덮었다. 일직선으로 뻗은 초록빛 물결은 지그재그로 출렁이다가 어떤 규칙성도 없이 동쪽 서쪽에서 출현했다. 사람들은 제각각 흩어져서 제 마음에 드는 방향을 바라보며 오로라를 감상했다. 원래 오로라는 그 색깔이 천차만별이어서 옅은 에메랄드 빛인 오로라도 있고, 붉은빛이나 노란색도 있다는데, 이번에 내게 다가온 하늘의 진풍경은 초록빛이었다. 삼각대에 고급 카메라를 대기시켜놓고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던 어느 여행자는 이 황홀한 장면을 놓칠 세라 분주했다. 


나도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무수한 동경으로 바라봤던 그 오로라를 기념하리라.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로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이미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로라는 노출 감도가 높은 전문가용 카메라로 촬영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삼각대도 없고, DSLR 카메라도 가지고 있질 못했다. 오로라 투어 전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준비했으면 좋았으련만 빠듯한 교환학생 생활 중에 그럴만한 경제적 형편이 되지도 못했다. 


그래도 뭐 상관없다. 셔터를 누르고 7초쯤 세어야 찰칵 소리를 내던 나의 SONY 하이엔드 카메라에게도 대학 캠퍼스에서 셀카나 찍었을 팔자에 이 무슨 호강이란 말인가! 추위와 싸움하는 카메라 배터리가 오늘따라 더 기특하다. 당장 배터리가 닳으면 충전도 어려울 텐데, 오늘따라 꽤 오래 버텨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제 인생의 최고의 광경을 기록하는 것이라 자부하고 있을 테지. 



그 이름도 벅찬, 오로라.



사진을 몇 방 찍자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게 중요한 것은 두 눈의 광경이었고, 순간의 놀라움이다. 훗날 사진을 보면서 그때 그 감정만 기억해내면 감사하다. 사진은 모두 흔들리고 오로라는 내 두 눈으로 본 것보다 형편없게 찍힐 게 분명했다. 나는 다시 장갑을 끼었다. 카메라는 전원을 끄기로 했다. 언덕에 누운 그대로 두 눈 가득히 새까만 하늘에 출렁이는 초록빛의 춤사위를 말없이 감상해 보기로 했다. 두 눈에 간직해보자. 어린 시절 만화 영화에서, BBC 다큐멘터리에서, 남의 세상 얘기라고 막연히 우러러보았던 그림이 보였다. 와.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보고 있다는 거다. 내가 여기서, 진짜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과학 잡지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서부 영화의 낯선 골목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아름답다 느꼈고, 때로는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죽기 전에 해보면 멋진 일일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그중 하나였던 오로라를, 나는 무려 23살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일찍이 보게 되었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 아니라 일단 꿈꿔보고 살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구는 여전히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세계였지만 마음만 먹는 다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들이 나한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이 순간이 조금 울컥할 것도 같았다. 아주 막연하게, 내게는 꼭 한 번쯤 만나고 싶었지만 세상 너무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았다. 그것은 갖고 싶은 물건일 수도 있고 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처럼 나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세계 말이다. 근데 오로라를 보고 있자니, 그 모든 게 다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내가 원한다면 모든 게 곧 내 곁에 와줄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과, 삶에 대한 순진한 믿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신이 주신 선물, 인생의 보험이 될 기억.




나는 행운아라고 

스물셋에 확신했다


불확실한 소망을 위해서 비행기 티켓을 사고, 투어를 신청하는 일 조차, 내가 트롬쇠와 다소 가까운 오슬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쉬운 일이었을 거다. 한국에서 오로라 여행을 결심하는 것은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손해 볼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두려워하게 한다. 이렇게 인생의 많은 절정들도 다소 운에 맡겨야 하는 일이 태반이다. 그래서 우리는 손해가 덜한 일들을 위해 모험을 잠시간 보류할 때가 있다. 오로라를 못 보면 여행비를 탕진하는 것이 두려워 트롬쇠행 티켓을 타지 않은 나의 오슬로 친구들도 그랬다. 


어쩌면 내가 맘처럼 풀리지 않았던 20대를 보내면서도,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하는 이유는 이 오로라의 잔상 덕분일 거다. 그날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 있다고 자신했는지 모른다. 원하는 것을 위해 행운으로 다가서는 삶, 오로라를 마주하러 가는 삶 말이다. 그 결과가 항상 오로라의 모습처럼 거대하고 번쩍번쩍하리라 장담할 순 없을지라도, 오로라를 보든, 보지 못하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회는 영영 없다는 것을 23살 마음속에 각인했다. 


어려서 무엇이든 잘 되기만 했던 그 치기 어린 나이가 지나 20대 후반의 숱한 실패에 가슴이 무너질 때에도 나를 구원한 것은 바로 그 빛나는 각인, 2박 3일의 오로라 여행이었다. 오로라는 하늘에서 30여분을 그렇게 출렁였다. 넘실넘실 중구난방으로 등장하던 빛들은 어느새 한 지점으로 모여들어 서로 다른 굵기와 선명도의 줄기를 만들었다. 마치 하늘 한가운데 조명이 달려서, 오로라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우주가 멋진 쇼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서울에 있는 꿈과 모험과 환상으로 가득했던 한 놀이공원에서 밤 열시면 보여주던 레이저 쇼는, 이런 오로라를 흉내 낸 것일 거다. 문득 아쉬웠던 순간은 그때였다. 내가 혼자라는 것. 열심히 살다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꼭 다시 와야겠다는 그때의 약속은 지금 내 몫, 남겨진 내 몫이다.



* 여행 정보는 트롬쇠 관광 정보 사이트를 이용하세요 -> www.visittromso.no/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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