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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Couch Surfing in Europe

프랑스 파리에서 바람맞은 날

by Mellowee 2016. 12. 21.

Paris, France.


Paris, France.




분명히 오늘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분명히 오늘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Convention 역에는 아무도 없었다. 3시가 3시 10분, 3시 10분이 3시 20분으로 바뀌는 동안, 불길한 예감은 멈추지 않았다. 이상했다. 처음부터 예감이 좋은 여행이었는데. 이번 프랑스 여행 일정은 총 7일이었는데, 다행히도 전 일정 카우치 호스트를 쉽게 찾은 터였다. 그런데 첫날밤과 둘째 날 밤을 함께하기로 한 Paris에서의 호스트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문자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리저리 역 근처를 배회하면서 반복적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결론은 빨랐다. 


'호스트는 오지 않는다.' 


사실 이번 프랑스 여행은 23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었다. 마침 노르웨이에서 근무하고 있던 주말 한글 교사 근무가 휴무이기도 했고, 학교 수업도 휴강이 연달아 있었다. 기회다 싶어서 유럽의 저가 항공인 라이언 에어 비행기 스케줄을 살펴보니 파리행 티켓이 왕복 2만 원이 조금 안 되었다. 기회였다. 덥석 잡았다. 타지에서 영어로 공부를 하는 처지라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행할 때 가이드북을 준비한다든지 블로그 후기를 사전 학습하지 않는 나다. 그러니 공항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가 맨땅에 헤딩하기다. 그런데도 여행은 순조롭기만 했다. 무작정 도로를 걸으니 개선문이 나오고, 샹젤리제 거리가 나왔다. 그래서 속으로 얼마나 뿌듯했는데, 이게 뭔가. 막상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생일 여행이 위태롭게 진행되고 있다. 



For coming home, you'll have to get the metro line 12 (dark green) to Mairie d'Issy and stop at the station "Convention". When u'll arrive at this station plz send me a text on my mobile and i'll come to pick u up...i'm at 5min of walk...don't call me just send me a text it's cheaper and i always check my mobile^^ 


오늘 만나기로 했던 Alleen, 그녀가 내게 보냈던 메시지ㄱ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는 것보다 새로 만난 프랑스를 조금 더 구경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왜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품지 않기로 했다. 사정이 있었을 것 같았다. 꼭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일단 여행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갑작스럽게 손님을 거둘 수 없을 만큼 바쁜 상황이 찾아왔거나 핸드폰이 고장 났을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잃어버렸거나 하는 등의 피치 못할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다만 그게 나에게 일어나여서 문제이긴 했지만. 물론 저녁 때라도 그녀와 연락이 닿을 가능성이 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내 여행에 임하는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예감이라는 게 있다. 왠지 연락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다른 숙소를 찾아야 할 것이라는 분명한 체념 같은 것 말이다. 일단 동네에 있는 대형 마트 같은 곳에 들러 간단하게 페스츄리라도 사 먹으며 당장 오늘 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궁리를 해봤다. 개선문도 봤고, 아직은 겨울이라 조금은 쓸쓸한 샹젤리제 거리도 걸었으니 이제는 파리의 랜드마크 지역이라는 몽파르나스 타워 부근에 가보면 어떨까. 



프랑스 역의 모든 역은 다 잊었지만, 잊지 못하는 단 하나의 역.





어릴 땐 

왜 그렇게 

순진한 지 모르겠다 



일단 메트로를 탔다. 카우치서핑이 아니었다면 들르지 않았을 Convention역의 풍경은 어쩐지 야속했지만 덕분에 프랑스 하면 반드시 떠올릴 이름이 되어버렸다. 프랑스에 막상 오니까 낭만적인 도시라는 생각은커녕 도대체 이렇게 칙칙하고 분주하기만 한 도시를 비싼 돈 주고 왜 여행하러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툴툴 거리는 지경까지 되어버렸다. 여행은 스트레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파리의 지하철만 해도 그랬다.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스산한 풍경이며 보수되지 않은 곳곳의 퀴퀴한 냄새와 낡은 흔적들이 참 을씨년스러웠다. 여기에는 오기 전에 파리에는 소매치기가 너무 많다고 조심하라는 말만 주야장천 들은 것도 한 몫했다. 나는 지하철 안의 유일한 동양 여자였다. 현지인들이나 여유로운 여행자들에 비하면 차림새도 남루했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우아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여행은 없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실망해서 그런 걸까? 이후로 나는 내내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옆자리에 앉은 무표정한 파리 시민이 혹시 소매치기는 아닐까 의심하는 내가 스스로도 꼴 사나웠다. 이런 마음으로 무슨 여행을 한단 말인가? 




도시는 여행자의 외로움과는 무관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내 신발





몽파르나스 타워도 63 빌딩에 비해 대단해 보이지도 않다 생각할 즈음, 설상가상으로 파리의 검은 구름들은 소나기를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 비가 온다. 당장 오늘 잘 곳은 없는데, 비까지 오니 혼자 괜스레 처량 맞아진다. 태극기가 왼편에 조그맣게 박음질된 뚱뚱하고 새까만 나의 가방이 보인다. 유별난 애국자라서 태극기 문양이 박힌 백팩을 메고 있는 것은 아니다. 2년 전쯤 대학생 해외봉사단으로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가방을 받았다. 나는 이런 가방을 파리에 들고 올만큼, 어떤 여행자보다도 세련되지도 못하고 준비도 되지 않은 학생일 뿐이었이다. 


신발은 언제 또 이렇게 꼬질꼬질하게 더러워졌을까? 약간의 고독함이 밀려왔다. 그제야 정말 나는 이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외로웠다. 처음 온 나라에서, 사람 참 바글바글한 도시, 파리에 있는 나는 그 누구와도 연이 없고, 내 외로움과 불쌍한 처지도 어느 누구와는 하등 관계없다는 사실이 내가 이 세상에 오롯이 '혼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 뿐이었다.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스트와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상상은 걱정해본 적도 없었으니 어찌 보면 내가 무모하고 대책이 없었던 것 같다. 고백하건대 쉽게 생각했다. 첫 카우치서핑 경험이었던 노르웨이 트롬쇠에서의 여행이 너무나 순조로웠기 때문이었을까? 카우치서핑을 하다 보면 호스트 중에는 미리 자신의 주소를 알려주고 찾아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호스트들이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뒤 여행자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는 경우가 많다. 호스트들도 이런저런 안전을 생각해서 후자를 선호하는 것 같지만 내가 조금 더 영리했다면 미리 그녀의 집 주소를 알아왔어야 한다. 파리 일대의 호스텔이나 한인 민박 주소 하나 정도는 알아오는 준비성도 없었다니. 


한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 자신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긴 파리다. 그 유명한 파리, 수많은 관광객과 시민들로 북적이는 서유럽의 상징, 절대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 수 없는 곳. 사실 지금 이 상황이 잘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었다. 내가 돈만 지불한다면 이곳은 절대 나를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 만큼 황량한 오지도 아니고 아니니까. 무서울 게 뭐가 있나? 그렇게 생각을 바뀌고 다시 메트로를 탔다. 


일단 에펠탑으로 향하기로 했다. 에펠탑을 보고 나서, 들뜬 마음으로 어디라도 찾아 몸을 녹이자, 그렇게 마음먹었던 것 같다. 빗방울이 창밖을 가린다. 노을이 지고 있다. 이런 날에도 에펠탑은 예쁠까? 





기억이

구원한다 


마침 메트로에는 언제 탔는지 모를 거리의 악사가 동전 몇 닢을 위해 아코디언 연주를 하던 중이었다. 지상으로 달리는 메트로에서 바라보는 비에 젖은 파리 시내가 펼쳐진 창밖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역시 이번에도 열차에서 유일한 동양인의 얼굴을 한 내가 비치고 있다. 이윽고 악사는 Zequinha de Abreu 작곡의 'tico tico no fuba'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 가는 파리의 바깥 하늘은 상황에 비해 꽤나 운치 있게 느껴졌다. 동전 몇 닢을 바라는 연주라기엔 음악이 아름다웠다. 악사의 손가락이 현란해질수록 파리 시내 오밀조밀한 건물들 사이로 에펠탑이 점점 진해지는 것도 참 절묘했다. 



▶ Zequinha de Abreu 작곡의 'tico tico no fuba'


그러고 보면 음악이란 게 참 신통할 때가 있다. 'tico tico no fuba'를 듣자 쓸쓸함은 잠시 잊히고 대학 시절 활동했던 클래식 기타 동아리가 떠올랐다. 사실 이 곡은 동아리 후배들이 연주회 무대에 올렸던 곡이기도 했다. 내가 몸 담고 있던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는 다양한 고전 음악들을 솔로로, 듀엣으로, 삼중주와 사중주로 연주하곤 했다. 사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악기라는 이유로 피아노와 기타를 좋아했는데, 기타 공연의 진짜 매력은, 서른 명 넘는 단원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합주에 있다. 


합주에 대한 첫인상은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동아리를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아리에 나오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나는 기타는 혼자 쳐도 멋진 악기라서 좋아했는데 나 좋자고 연습하는 기타가 동아리에서는 은연중에 경쟁이 되고 있었고,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알듯 모를 듯 선배들의 차별도 있었다. 그런 동아리의 속도는 기타를 느릿느릿 배우고 싶었던 내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마침 동아리에서는 방학을 맞이해서 개강 후 무대에 올릴 정기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하나같이 후배들이 하루빨리 기타 실력이 늘기를 종용했다. 나는 그게 너무 힘들어서 합주가 끝나는 대로 다른 동아리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있으니 음악 공연을 준비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30명이 넘게 모인 합주단은 단 한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매주 꼬박 3번씩 꼭 4시간씩 수 백번 같은 곡을 연습했으니, 보통 지구력이 없으면 모든 단원이 끝까지 열정적이긴 힘들었다. 


하지만 신통한 일도 동시에 일어났다. 여러 얼굴들이 악보가 한마디 한마디 진행될수록 합주단 사람들의 나의 일상 속 깊이 관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그 작은 집단 안에서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거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말없이 또 누군가는 자신만의 탄현을 고민하느라 밤낮 어린 예술가의 얼굴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동아리방에는 졸업생들로 붐비는 날들이 더러 있었다. 학교를 졸업 한 지 수년은 지났을 선배들도 동아리를 자주 찾아와 옛날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단지 기타가 좋다는 이유로. 동아리를 아낀다는 이유로. 그렇게 클래식 기타로 뭉친 사람들이 부대끼는 풍경은 어떤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아주 긴 업적처럼 보였다. 


그렇게 동아리와 동아리 사람들에 내게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때쯤, 30명이 30개의 소리를 내던 무대는 연습 시간이 열 번에서 스무 번으로, 스무 번에서 서른 번으로 바뀌고 있었다. 서른 대의 기타 소리가 하나의 소리로 모아지고 있었다. 연주회 당일이 되자 기분이 좋았다. 누가 보더라도 아마추어스러운 공연이었을 테지만 각진 정장의 옷매무새가 아직은 어설픈 단원들이 썩 멋졌다. 그제야 나는 내가 원했던 음악으로 누릴 수 있는 낭만은 혼자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서른 명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서른 명이 하나가 되는 300번의 연습이 필요했다. 신기하게도 혼자일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더 멋진 음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자 나는 클래식 기타, 아니 동아리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언제 힘들었냐는 듯, 대학을 다니면서 10번이 넘는 크고 작은 연주회에 동참했다. 어떤 공연은 잘 쳤고 어떤 공연은 몹시 망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클래식 기타를 잘 치는 편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나는 그 뒤로 동아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래서 나는 이제 클래식 기타를 혼자 연주하면 재미없는 악기라는 이유로 참-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 파리까지 와서 그 사람들 생각을 한다.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사람들 생각에 푹 빠져있느라 나는 또 파리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기억은 나에게 쓸쓸할 틈을 주질 않는구나. 아마 파리 메트로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 흘러나왔다면 나는 그 곡을 연주했던 2008년의 여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왔다면 그 곡을 연주했던 2008년의 겨울을 떠올렸을 거다. 혼자 아는 추억 덕분에 파리의 어두운 지하철이 어느새 놀이동산의 실내 열차처럼 신이 났다. 괜히 웃었다. 동아리에서 있었던 어떤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혼자 세상에 던져졌다는 불안한 떨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순간의 위험한 공기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어느새 연주가 끝나고, 지하철은 다시 잿빛으로. 나는 떠나가는 악사를 아쉬워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내게 별다른 대책은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끝까지 위풍당당했다. 어차피 비행기 티켓은 있으니 전 재산을 털어서 호텔이라도 들어간다면야 뭐든 못하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까지 작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찾아간 관광안내소는 문이 닫혀있었다. 메트로 역무원에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해줄 수 없냐며 황당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들어가 보려는 속셈이었다. 근처에 PC방이라도 있다면 한인민박 주소를 알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았지만 근처에는 PC방은커녕 PC방의 위치를 영어로 알려줄 만한 사람들도 없었다. 내가 길을 물을 때마다 파리의 행인들 모두가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이다. 


시내를 돌고 돌아 이제는 정말 해가 사라진 시각. 앞 길에 동양인 세명이 말없이 걷고 있었다. 그때 떠올랐다. 한국인 일행이라면 십중팔구 한국인 민박에 묵지 않을까? 일단 말을 걸어볼 일이다. 


"안녕하세요 - 혹시... 한국 민박에 묵으세요? " 


그럼 그렇지! 마침 민박집에 머무르고 있는 그들은 내게 민박집 약도를 흔쾌히 주면서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야호! 감사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어물어 찾아간 첫 번째 민박집은 사정 때문에 나를 받을 수 없었고, 대신 그 집에서 다시 소개받은 민박집에 찾아가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민박집은 지극히 청결하고 쾌적했다. 그 새 하얗고 때 없는 분위기가 오늘 내내 서투르고 쓸쓸했던 내 모습과 다르게 몹시도 반가웠다.




혼자니까

괜찮아 


결과적으로 나는 예상 밖의 여행을 맞이해버렸다. 호스트를 잃어 예상치 못한 숙박비를 지출해야 했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프랑스 현지인에게 뜻하지 않은 실망을 해야 했다.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다. 갈 곳 없는 날, 소나기를 뚫고 혼자가 되어보는 기분을 느껴보는 것. 어쩌면 그것은 혼자 떠나온 여행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5분 뒤, 한 시간 뒤, 반나절 뒤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은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친절한 친구들과, 따뜻한 집 덕분에 잊고 있었을 뿐이다.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더 좋은 것인 줄 착각했던 19살의 어린 내게, 어느새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한 클래식 기타 동아리 사람들처럼 말이다. 


앞으로 프랑스에서 세 호스트와 카우치서핑이 약속되어 있다. 하지만 첫날처럼 나는 또 바람맞을지 모를 일이다. 전화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아직 주소를 주지 않은 집과는 영영 메일 연락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앞으로는 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일을 혼자 감당하는 일이 불안하고 갑작스럽게 느껴진다면, 나는 아마 파리의 비 내리는 풍경을 기억해 낼 것 같다. 꼬질꼬질한 운동화의 앞 코를, 그것을 순진하게 내려다보던 나의 작은 체구를. 그러면 오히려 혼자가 되어 무섭다거나 슬프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조금 늦었지만, 정말 생일 선물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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