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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Couch Surfing in Europe

첫 카우치서핑 in Tromsø, Norge

by Mellowee 2016. 12. 20.




어려서는 

모험을 동경한다 


어떤 사람들은 모험을 귀찮아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험을 동경한다.

나는 후자다. 적어도 스물셋에는 그랬다. 


길 위의 난관에 맞서 성장하고, 무수한 다름에 대하여 포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린 나는 여러날을 원했던 것 같다. 알고보면 진부하지만 대개 화려하고 유명한 이야기 속에서 모험을 떠나고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들은 꼭 그런 모습이었다. 근사했다. 


그러나 만남과 여행을 동경한다고 말하기엔, 실제 본인의 성격은 그 꿈과는 꽤나 거리감이 있었다. 실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밖으로 나가 노는 것도 딱히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모두가 잠든 밤, 책에서 찾은 나만의 문장들을 잡아먹으며 스무 살을 넘겼다. 다만 그럴수록 내심 책장 밖이 궁금해지긴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들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신기한 맛들이 존재할까? 


내게 진짜 모험할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을 때는 스물셋. 노르웨이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유럽으로 나가게 되고 혼자 살게 되며서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행에 유리해진 것이다. 신기하게도 스무살을 훌쩍 넘은 그 나이쯤 되니 붙임성도, 포용력도 십대 시절 보다 더 자라있었다. 그제야 나는 진짜 떠나보기로 했다. 가보자. 최대한 낯선 방식으로. 모험 답게. 


그때 '난생 처음 들어본 여행 방식', 카우치서핑을 알게 됐다. 카우치서핑이란 일종의 여행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데, 이곳에 모인 여행자들은 말 그대로 타인의 집 안에 있는 카우치(소위 거실 소파라고도 하는)를 서핑하듯 서로의 잠자리를 신세 지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 중세 판타지에 등장할 법한 '지나가는 나그네요, 하룻밤만 재워주오'의 21세기 버전으로 볼 수도 있겠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카우치서핑은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꽤 알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카우치서핑 커뮤니티만의 용어도 존재한다. 여행자에게 무료로 잠자리를 허락하는 집주인은 '호스트', 그리고 그 호스트의 집에 머무는 여행자는 '서퍼'라고 부른다. 카우치서핑 웹사이트에 방문하면 바로 그런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호스트들과 서퍼들을 만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그 웹사이트가 어찌나 별천지였는지 모른다.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회원들의 프로필을 한명 한명 읽다보니, 새삼 세상에 이렇게 낯선 이들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흥미로워진 거다.


초면인 외국인의 거실 소파에서 자는 일' 이란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장난스럽게 호기심도 일었다. 떠나지 않으면 모를 여러가지 일들 중에 단연 '외국인의 집'은 흥미로운 즐길 거리가 분명했다. 당장 오늘에라도 그들의 남다른 침실을, 거실을, 구경하며 그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서 안달이 날 참이라 마우스를 쥔 손이 바빴다.


사실 평소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성향이니 모르는 사람 집에서도 두 다리 잘 뻗고 잘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내게는 안성맞춤인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카우치서핑은 현실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장점이 많아 보였다. 일단 현지인의 개성적인 인테리어나 취향을 가까이서 엿보면서 동시대 젊은 세대들이 가진 '트렌드'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며 '문화적 다양성'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결정적으로는 여행 중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두근 두근

첫 경험


카우치서핑을 도전할 첫번째 목적지는 노르웨이 북부 트롬쇠! 오랫동안 벼르고 있었던 노르웨이 북부로의 오로라 여행에서 카우치서핑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실 2011년 당시만 하더라도 카우치서핑이라는 개념은 한국에서 굉장히 낯선 것이라 포털 사이트 후기도 부족했고, 어디에 대신 물어볼 곳도 없었다. 하지만 '선배'가 없었다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기도 했다. 선입견이 생기지 않아서 좋았고, '카우치서핑 여행'이 마치 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동네 어귀에서 이런 오로라를 볼 수 있다



노르웨이의 작은 북극권 도시, 트롬쇠는 오로라 연구소가 위치해 있을 정도로 노르웨이 내에서는 오로라 관측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오로라를 보는 게 목적이니, 트롬쇠를 목적지로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북구의 파리(Paris)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멋진 야경 또한 유명하다는데, 그게 사실일지는 가서 확인해볼 참이었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즐거움 탓일까? 오슬로에서 트롬쇠로 떠나는 Norwegian air 안에서 사실 들뜨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이번엔 카우치서핑을 하는 여행이잖아! 오로라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 북부 도시로 떠나는 스물두살의 여행은 특별하다고 호들갑을 떨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하려 하자, 말로만 듣던 트롬쇠 야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작은 빛들은 둥그런 트롬쇠 해안가를 따라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요정들이 숨어 사는 반딧불 마을을 위에서 바라본다면 이러할까. 그때 생각했다. 오로라는 아직 모르겠고, 카우치서핑도 어떨지 미지수야. 하지만 여기가 북구의 파리라는 그 말은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겠구나.


첫번째 장관을 맞이하며 문득 느낀 안타까움은, '지금'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들뜨고 기뻐하면 맞장구쳐줄 사람이 없으니 별 수가 있나. 그저 마음 속으로만 맘껏 설렜다 차분해졌다 반복을 했다. 공항에서 내리면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만날 수 있겠지? 다행히 내게는 오로라 말고도 이곳에서 꼭 만날 누군가가 있다는 게 북구의 차가운 여행길을 따뜻하게 느끼게 했다.


트롬쇠에서 3일간 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되어줄 친구는 잉그리드라는 노르웨이 여자 대학생이다.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만나려면, 일단 카우치서핑 웹사이트에서 내가 여행할 지역의 호스트들을 물색하고 그들의 프로필을 참고하여 호스트 요청을 보내야 한다.


물론 모두가 그 요청을 제 때 읽거나 바로 답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까다로운 여행자 심사를 거쳐서 요청을 수락한다. 당연히 개인적인 사정이나 특정한 이유 때문에 거절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이고, 그 선택은 당연히 존중되는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였다. 잉그리드 같은 경우는 내가 카우치서핑 요청을 보낸 첫 호스트였. 그런 그녀가 내가 쪽지를 보내자 마자 곧바로 나의 요청을 수락한 것이다. 상당히 순조로운 시작 때문이었을까? 주변에서 흔히들 물어봤던 '안면도 트지 않은 외국인의 집에 가도 되는 걸까? 게다가 나는 여자 혼자인데?'라는 걱정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재미있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은밀한 호기심과 묘한 정복욕까지 들었다.


카우치서핑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모르는 외국인의 집에서 잔다고? 누가 오해하면 어떡하려고!'라는 주변의 반응은 지루하게 이어지긴 했지만 남들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트롬소 공항에 도착하자 맞닥뜨린 첫 인상은 까만 밤에 하얀 눈이 사방으로 소복한 겨울 나라의 밤풍경이었다. 내가 있던 오슬로도 분명 노르웨이인데, 훨씬 북쪽에 있는 도시 트롬쇠의 어두움과 한기는 확실히 다르다.


어쨌거나 자, 이제 도착을 했으니 이쯤돼서 잉그리드가 알려준 그녀의 집 주소를 꺼내들기로 했다. 꼬깃꼬깃 작은 종이에 그녀의 주소를 메모해 온 나. 나는 그래, 16세기 여행자를 흉내내는 중이었다.


낯선 이국의 도로 명과 집 번호를 훑고 있으려니 지금 내가 발 디딘 이곳은 완전한 '타국'이야, 라는 느낌이 너무나 강하게 전해졌다. 


종이를 들고 잉그리드가 미리 일러준 버스 정류장에 섰다. 여기가 맞나 싶을 때쯤 중년의 노르웨이 여자가 다가와 노르웨이 억양의 영어로 말을 건다. "Are you going to the city center? The bus will arrive over there. " 차가운 도시의 초행길에서 만난 친절한 한마디가 겨울 오후의 눈처럼 반가웠다. 


그러고보면 이런 낯선 설국에서 겪는 매초 매순간은 내게 완벽한 스릴이 아닌가. 오로라를 보러 노르웨이 북부 도시의 눈발을 걷는 것은 얼마나 비일상적인 일인지. 나는 눈 밭 위에 가만히 서 있으면서도 감탄에 감탄을 자꾸만 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얼마간 달려 가자 끝까지 새까만 풍경일 것 같았던 트롬쇠에도 시내가 나왔다. 사람들이 이리 저리 걸어 다니고, 그 옆으로는 이것저것 생필품과 식료품을 파는 슈퍼들도 보인다. 그제야 요정이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가 맞구나 싶다. 


그러다 몇 개의 정거장을 더 지났을까. 터널을 지나 쪽지에 적힌 이름이 들릴 때쯤 조심스레 버스에서 내렸다. 덩그러니 펼쳐진 흰 눈밭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10대 남자아이들이 저 멀리서 제들끼리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다가 목표물을 발견했다는듯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잉그리드의 집을 찾아가면 내게도 오늘 몸을 누일 집이 생기겠지? 나는 그렇게 아장아장 아주 낯선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일상 속에 참여하는 여행



"트롤 인형이 달려있는 창문을 찾아. 

그곳이 우리 집이야."


마침내 눈으로 뒤덮인 동네 언덕을 밟고 밟아 잉그리드의 집을 찾아냈다. 그녀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의 주소를 재차 확인한 뒤 초인종에 손을 갖다 대었다. 잉그리드는 창가에 트롤 인형이 있으면 자기 집이라고 했다. 바로 그 트롤 녀석으로 추정되는 꼬질꼬질한 인형이 보였다. "그래 여기가 맞겠지? "


새로운 만남과 사건을 기대하는 마음은 어쨌든 싫지는 않다. 새 학기 교실에서도, 첫 데이트에서도, 나는 그런 낯선 설렘에 기분좋게 간지러워 했다. "할루! 웰컴! " 잉그리드가 나왔다. 곧이어 새로운 친구는 문을 활짝 열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눈이 없어지리만큼 활짝 웃는 그녀.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던가 싶을 만큼, 그녀는 내가 무사히 잘 찾아온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안아주었다.  


잉그리드는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서서 제 집의 현관문이 궤가 맞지 않은 것을 잘 안다는 듯, 문을 힘껏 당겨 닫는다. 그때 내가 만약 안경을 끼고 있었다면 눈가에 김이 잔뜩 서렸을 것이다. 낮은 계단을 타고 실내에는 온기가 전해졌다. 그녀의 집은 3층으로 이루어진 목조 주택 중에서 2층에 위치해 있었다. 


겉으로는 하나의 통나무집이 모두 한 가구의 집일 것 같은 펜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흔한 빌라처럼 층층이 세를 낸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형태의 건물이었다. 잉그리드는 제일 먼저 일상적인 일이라는 듯이 내 외투와 장갑을 받았다. 현관에는 각종 스키와 겨울용 방한 용품들이 가득했다. 


북극권 주민 아니랄까 봐, 거기엔 바로 오늘 입고 썼던 것 같은 스웨터, 털모자 털장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삐그덕 거리는 하얀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녀의 아담한 부엌이 바로 보였다. 집은 결코 크지는 않았다. 난생처음 들어와 보는 노르웨이 인의 가정집은 굉장히 낯설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파란색 페인트칠을 손수 한듯한 부엌 하며, 하얀 물방울무늬 무늬가 박힌 빨간 커튼과 빨간 의자는 그녀의 소녀 같은 취향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눈 덮인 산속의 산장 같은 잉그리드의 소담한 집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이 집에서 남자 친구인 크리스틴, 그리고 룸메이트 토룸과 함께 살고 있다. 


희한하게도 호스트인 잉그리드는 어쩐지 나보다도 조금 더 들뜬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짐을 내려놓자마자 집안에 있는 카우치서핑의 흔적들을 자랑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벽 곳곳에는 카우치서핑을 다녀간 세계 여행자들의 다국적 엽서가 걸려 있었고, 화장실에는 그녀의 집을 다녀간 사람들이 한 문장, 한 바닥씩 쓰고 간 방명록이 책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내가 오기 전에는 독일 여자가 일주일을 머무르다가 갔단다. 


그 중에서도 현관문 밖에 있는 계단 복도 벽에 걸어놓은 세계지도는 심상치 않았다. 커다란 세계 지도 속에는 알록달록한 압정들이 여기저기 꽂혀있는데, 어림 잡아도 100개가 넘어 보였다. 처음에는 그녀가 방문한 나라들을 표시한 흔적 같았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그녀가 맞이했던 손님들의 기록이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손님들이 올 때마다 그녀는 색깔 압정을 세계 지도에 꼽았다. 잉그리드만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풍습이었다.



 "한국은 네가 처음이야. 

압정을 꽂을 수 있는 기쁨을 줄게." 


그녀는 나를 보고 씩 웃어 보이더니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압정이 꽂히지 않은 한국 지도가 보였다. 그녀가 트롬쇠에서 200번의 카우치서핑 손님들을 맞이하는 동안, 한국에서 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니! 무엇이든지 처음이라고 딱히 별스러운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기분이 괜히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타인에게 오로지 나만이 줄 수 있는 '처음의 특권'이 괜히 마음에 든다. 


컬러 압정으로 신고식을 마치고, 나는 마침 그들이 준비해 놓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오랜 카우치서핑 경험 덕분에, 그녀는 호스트와 게스트가 함께 식사하는 것이 꼭 의무는 아니지만 게스트가 원한다면 한 접시 함께 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토마토 수프와 중국식 감자 당면 요리. 알고 보니 그녀는 평소에도 아시아 음식을 즐겨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식탁은 어쩐지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재밌게도 토룬과 크리스틴은 내가 마치 어제도 그제도 그들과 함께 밥을 먹던 룸메이트였다는 듯이 대했다. 먹든지 말든지. 편한 것을 넘어 무심함을 보였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 둘 중 어떤 이도 갑자기 테이블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한다거나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하려 하지 않았던 게 문득 생각이 났다. 식탁에서의 크리스틴의 일관된 침묵은 그것을 더 명확하게 느끼게 했다. 내가 잉그리드와 대화를 하면 그는 영어를 알아들으면서도 잉그리드가 한번 더 물어봐 주어야 대답을 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상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눈치 보이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모든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흥미로웠다. 이런 과묵함과 수줍음이, 그냥 너무나 일상적인 크리스틴의 본래 모습 같아서 오히려 편안했달까. 그는 그저 애써 자신을 꾸미지 않는 것이다. 대신 크리스틴은 카메라 충전이 필요해서 USB를 찾을 때나, 내가 잘 곳인 거실의 카우치를 정리할 때나 모두 나서서 도와주었다. 나를 경계하거나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토룬도 마찬가지. 밸런타인데이 기념 초콜릿이 생겼으니 몇 개 맛이나 보라며 츤데레 기질을 발휘했다. 크리스틴과 토룬의 침묵과 넘치지 않는 친절은 다만 낯선 나라에서 생전 처음 보는 여자애가 왔다 해도 자신의 성격이나 자세를 고칠 필요가 없다는 태도가 있었기 떄문은 아닐까. 생면부지의 외국인에게도 내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잉그리드 역시 여행자인 나를 의식해서 자신의 일과를 반납하고 여행자의 일정에 휩쓸리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훗날 내가 만난 어떤 호스트는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여행 가이드를 자처하기도 했었지만 나는 잉그리드네 집의 분위기 자체가 좋았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의 일상에 참여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로 카우치서핑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잉그리드의 고양이. 이름이 뭐더라...?


수많은 카우치 서퍼들의 흔적들.


잉그리드의 손님 방명록, 월드맵




해피 발렌타인


그날 밤, 홀로 트롬쇠 여행을 하고 돌아온 집 안에는 향긋한 빵 냄새가 가득했다. 잉그리드는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서 초코 머핀을 만들고 있었다. 잉그리드는 건강 상의 이유로 베이킹을 할 때 설탕을 쓰지 않는다. 헌데도 달지 않은 초코 머핀의 향은 어찌 이리 달까?


궁금함에 빠져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미 부엌에는 초코 머핀이 싱크대를 가득 채우고 내 입으로도 두어 개 들어온 참이다. 우리는 곧 머핀을 분홍색 체크무늬의 머핀 종이에 담고 하나하나 비닐에 포장을 했다. 분홍색과 붉은 리본을 달아주니 그럴싸한 밸런타인데이 선물이 되었다. 


마침 그녀의 부엌 벽면에는 카우치서핑 손님들이 남기고 간 크고 작은 스케치와 엽서의 흔적들이 훈장처럼 달려있었다. 그녀의 공간에 묻어간 수많은 사연들과, 흔적들에 매료된 나는 엽서만 한 종이를 꺼내어 무언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잉그리드에게 내가 첫 한국 손님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그녀에게는 흥미로울 '유용한 한국어 표현 알려주기'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교환학생들이 친구 사귀는 데 흔히 쓰는 클래식한 스킬이다.


"잉그리드, 내가 한국에서 왔잖아. 네가 오늘 같은 날 가장 써먹기 좋은 한국말 딱 하나 알려줄게. " 


"정말?!..... 나 그거 뭔지 알 것 같아. " 


눈치 빠른 잉그리드. 나는 이미 종이에 큼지막하게 글자를 완성했다. 잉그리드는 호기심을 못 참고 머핀을 굽다가 식탁으로 돌아왔다.


"뭐라고 읽어?" 

"쉬워, 따라 읽어봐! 발음하기 어렵니?"


잉그리드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컴퓨터를 하고 있던 크리스틴에게 잊을 새라 말한다. 



"Sarang, haeyo." 쪽. 


그래, 잘한다 잘해. 혼자 타국 땅에서 볼만한 풍경으로는 영 맘에 들지 않지만 어쩐지 뿌듯하기도 한 풍경이다. 무뚝뚝한 크리스틴은 오늘 호강한 게 아닌가. 내가 아니었다면 한국말로 사랑의 고백을 들으며 밸런타인데이를 보낼 수는 없었을 테니까. 저렇게 멋없는 남자애가 어쩜 저렇게 매력 있는 잉그리드를 짝꿍으로 만났을까?


괜히 사랑해요, 라는 표현을 알려줬나? 혼자 툴툴 거리며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초코 머핀을 오물오물 먹었다. 달지 않아 맛이 없었을 텐데, 왜 기억에는 자꾸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모험이 귀찮아질 때

나는 그날 밤을 떠올린다


그날 밤, 잉그리드와 크리스틴은 두 사람의 힘을 합쳐 거실 카우치에 내 침대를 만들어주었다. 특히 각종 짐들을 치우고, 담요를 겹쳐서 푹신한 침대를 만들어주는 크리스틴의 야무진 솜씨에서 진심어린 배려가 느껴졌다. 잉그리드와 크리스틴이 둘만의 침실로 들어가고, 나는 카우치 위에 챙겨간 침낭을 꺼내서 몸을 쏙 밀어 넣었다.


부엌도 조용. 고양이도 조용. 냉장고만 얕게 윙 소리를 낸다. 카우치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본다. 오늘 꼭 이 거실 만큼은 오롯이 내 것 같아 마음이 부르다. 낯선 집이 내 집처럼 아늑했다. 


스물셋의 작은 밤. 시간이 흘러서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아무래도 모험이 귀찮아진 것만 같을 때, 나는 꼭 이날의 카우치를 떠올린다. 여전히 나는 모험을 동경하고 진척시키지만, 그때만큼 첫 시작, 첫 만남을 즐길 수 있을지 미지수일 때, 설탕 빠진 초코 머핀 향이 가득했던 카우치의 묘한 아늑함은 내 어깨를 펴주기 때문이다.


직장을 바꿔야 할 때, 새로운 인연을 사귈 때 나는 곧잘 몸을 웅크린다. 그것은 아마도 격렬한 환대와 완벽한 정착을 기대하는 섣부른 욕심 때문일 지도 모른다. 기대한 것이 없을까봐 두려워하는 비겁함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카우치서핑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나는 다시 겸손해진다. 그 시절, '내 기대와 같아야할텐데' 라는 마음은 애초에 모험이랑은 관계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내가 처음가보는 어느 외국 도시, 내가 처음 만나보는 어느 외국 소녀의 일상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기꺼이 맞이할 마음가짐으로 여행에 임했던 어린 날의 나를 다시 떠올리게 되니까.


나는 그날 카우치에서 깊은 단 잠을 잤다. 낯선 세계를 내가 거부하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거부당하지 않고 환영받았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말이다. 그것은 너무나 새롭고 짜릿하지만 따뜻하고 아늑한 기분이었다. 나는 이 스물 두살의 기억이 스물 일곱살에도, 서른 일곱 살에도 꼭 영원하길 바라며 잠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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