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 Couch Surfing in Europe

너는 Always Smiling 하는 사람이야

by Mellowee 2016. 12. 22.

Munich, Deutschland


Scholoss Nymphenburg, Munich in Deutschland


Scholoss Nymphenburg, Munich in Deutschland





카우치서핑의

재미 


"옥수수도 아니고 옥수수수염에서

이런 맛이 난다고? 음~ 좋다." 



카우치서핑 기념 선물로 건네준 옥수수수염차를 바로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며 로라가 말했다. 동그랗게 두 눈을 뜬 그녀의 파란 눈을 보니 옥수수수염차의 향이 싫지 않은가 보다. 


뮌헨에서 만난 로라는 2박 3일 동안 나를 거실에서 재워줄 동갑내기 호스트다. 그녀는 아시아 문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내가 그녀에게 카우치서핑 호스트 리퀘스트를 보냈을 때는, 마침 그녀가 남자 친구 팀과 함께 한국 여행을 준비 중인 시점이었다. 무려 3주 동안이나 한국 전역을 여행할 계획이었다. 


Hey Sehee, you are very welcome to stay with Tim and me from the 19th to 21st! We're both interested in Asian culture and we would love to hear about Korea and try your Korean food, especially because we're going to Korea in summer for a 3 weeks holiday. I'll have to work on the 19th, but will be home at 6 pm. I don't work on the 20th, so I can show you around in the city and we can go to a beer garden if the weather is nice. It's very easy to get to our apartment from the train station, you have to take the metro U1 (direction "Mangfallplatz") or the U2 (direction "Messestadt Ost")...(중략) _ 로라와 주고 받은 카우치서핑 쪽지


덕분에, 그들은 나를 흔쾌히 수락했고, 나는 오늘 이렇게 그녀와 차를 나눠 마시고 있다. 뮌헨에 오자마자 님펜 부르그 궁전을 홀로 구경하고 난 뒤 작은 아시안 마켓을 들렀을 때 용케도 한국 산 옥수수수염차를 구할 수 있었다. 로라의 남자친구 팀이 만들어준 파스타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첫날 부터 로라의 친구들과 뮌헨 길거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독일에 온 것을 기념했다.


첫날밤을 시작으로 로라는 유독 자신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고 싶어했다. 내 눈치로서는 로라는, 원래 동네에 친구들이 정말 많은데, 외국인 여행자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재미를 누리면서도 평소의 친구들과의 파티나 술자리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독일에서 햇살 내리 쬐는 발코니는 기본이죠


Breakfast in Munich


'한국에 가야 할 곳은... 이태원..홍대..북촌..'



물론 나는 로라가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러 가자고 할 때마다 내심 쾌재를 불렀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재밌어서다. 내 또래인 이들이 이 나라, 이 동네에서 어떻게 노는지 내심 궁금한 마음이 커서 그렇다. 그 나라에 살았다면 겪었을 법한 '평범한 그들만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혹은 단기적으로나마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우치서핑이 매번 내게 여행에 대한 새로운 감상과 정의를 내리게 하는 이유는 그래서인 것 같다. 어떤 도시에서든지, 내가 만난 호스트와 첫인사를 나누는 순간부터 여행은 다시 계획되고 재편되었다.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달라졌던 것이다. 그러니 완벽하고 세련된 가이드북도 꼿꼿하게 약속된 계획도 여행의 만족도를 완성하는 데 큰 쓰임새가 없었다. 


로라의 집에서 자고 난 다음날 오후, 자기가 계산하겠다는 로라를 극구 말린 뒤 집 앞 슈퍼에서 사온 호밀빵을 함께 뜯는다. 그래봤자 1유로 쯤이나 썼던가? 이상하다. 파리 날리는 구멍가게에서 산 빵이 왜 이렇게 맛있는 거냐. 오물 오물. 이거 박스 채 사서 집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순간, 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안다. 박스 채 내 방으로 들고간 독일식 호밀빵은 더이상 여기 아닌 다른 곳의 그 무엇이 아닐테니까.


한참 한국 여행에 관한 꿀팁을 받아적던 그녀는 전 날 밤에 이어서 그녀의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맥주를 좋아하는 공대생이라는데, 어쩐지 그 수식어는 친근하다. 내가 알고있는 남산 자락의 어느 대학교에도 그런 오빠 동생들이 많거든. 그녀의 오랜 친구인 데이빗을이었다. 우리는 뮌헨의 상징인 비어가든 중에 하나, 영국 가든에 놀러 갈 예정이다. 

 



잘 

웃는 

사람 


데이브를 만나 함께 향한 영국 가든 곳곳에는 이미 맥주 세잔을 비운 사람, 소시지를 구워서 배를 두둑이 불린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인공 강에서는 수영복을 입고 카누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러웠다. 자연과 도시를 만끽할 줄 아는 태도가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여행자인 내 눈에는 이 풍경이 다 여유롭고 반짝거릴테지만, 독일의 어느 도시 생활자에게도 이 풍경은 남의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감히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니 너무 부러워하지는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Laura & David




우리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여행 얘기로 흘러갔다. 로라도, 데이빗도 여행을 좋아했다. 데이빗은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캠핑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었고 로라 역시 자연에 동화되는 장기 여행을 즐긴다고 했다. 그들의 다음 도착지는 한국이다. 


그 즈음 내가 한국에 같이 갈 수 없다는 게 이토록 아쉬울 수가 없다. 만약에 한국에 있었다면 비록 서울은 아니지만 우리집에서 로라에게 잠을 재워줄 수도 있을테고, 내가 베이컨으로 어설프게 만든 한국음식이 아니라 우리 엄마 손을 빌려 제대로 된 전주식 한국 전통 요리를 경험하게 해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Laura와 함께





대신 나는 이들에게 언제든지 오슬로에 놀러오라고, 내가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노르웨이 여행을 함께 해주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로라와 데이빗은 말 만으로도 충분하다는듯 잔을 부딪쳤다. 


영국 공원을 구경한 뒤 우리는 데이빗의 공대 친구들이 오늘 저녁에 가질 예정이던 기숙사 바비큐 파티에 합류했다. 각자 먹을 빵과 소시지 그리고 맥주를 구입하러 일단 마트에 들렀다. 데이브는 로라와 내가 먹을 빵과 소시지까지 자기가 계산했다. 내가 극구 말리려 하자 뒤에서 로라가 말렸다. 


"이 정도는 데이브가 사게 해도 괜찮아." 


괜히 친구가 맞이한 손님인 나 때문에 데이빗에게 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것도 잠시. 데이빗은 기숙사 바비큐 파티에 한국 여자애가 온 건 처음이라며 꽤나 재밌어하는 모습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기숙사 근처로 모였다. 노르웨이 기숙사와 비슷했다. 바비큐 파티 장소에는 소시지 외에도 구운 돼지고기들이 가득 고기 익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데이브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갑자기 만난 내게 우르르 다가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넙적한 빵에 소시지를 담아줄 때만큼은 씩 웃어 보이는 호방한 친절함이 데이브 못지 않았다. 노을 지는 뮌헨의 저녁 어스름. 별 거 없는 빵에 별 거 없이 구운 소시지는 뮌헨의 노을을 받아 너무나 맛있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어쨌거나 뮌헨에서의 각별한 기억은 역시나 로라의 친구들을 만난 일이 될 것 같다. 매일 밤 로라가 자신의 친구들과의 모임에 기꺼이 나를 참석시켰던 것은 내가 한국에서 그녀에게 되돌려주지 못할 고마움이다. 로라 덕분에, 그리고 그녀의 친구 데이빗 덕분에 뮌헨의 가장 평범한 하루하루들을 즐겨볼 수 있던 것이다.


어느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학교 근처에 자전거를 세우고 돌아가야 한다며 먼저 로라가 지하철에서 내렸다. 어느새 로라가 없어도 데이브와 나는 꽤나 친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그 사이 나는 독일의 모든 것이 틈틈이 신기한 여행자이기도 했기에, 눈은 사방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특히 펀칭을 하고 탑승해야 하는 독일 전철 시스템은 내게 흥미로웠다. 독일 지하철 시스템은 노르웨이와 비슷했다. 노르웨이는 교통 카드를 소지하고 타면 불시에 역무원이 카드를 검문한다. 전철을 타면 역무원을 열번 중 한 번 마주칠까 말까한 수준이다.


독일 뮌헨에서는 전철 티켓을 펀칭 기계에서 펀칭 한 뒤에 소지하고 타야한다. 역시 역무원이 따로 대기하고 있지는 않는다. 불시에 나타난다. 순간 역시 유럽이다 싶었다. 한국이라면 사람들이 정직하게 펀칭을 하고 지하철을 탈까? 한국이라면 절대 있을 수도 없고 혼란만 야기하게 될 시스템이라며 내가 고개를 저었다. 


"데이브, 만약에 영국 공원에서 맥주 잔뜩 마시고 지하철 탈 때 펀칭하는 거 까먹으면 어떡해? ㅋㅋㅋ"


내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펀칭을 하며 빨리 역무원이 내 티켓을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호들갑을 떨자 데이브는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 나를 놀렸다. 나는 정직하고 도덕적인 관광객이 되는 기분이라며 뿌듯하다고 말했다. 데이브는 그 나름대로 영락없는 관광객인 내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세희. 넌 사소한 것(Little things)에도 잘 웃는구나." 


"여행자들은 곧잘 그래. 어떤 작은 것에도 웃을 준비가 되어있지." 


"하하. 말 되네. 하지만 누구나 그렇지는 않아." 


"그런가...?"



내가 멎쩍어하자 데이브가 씩 웃는다. 귀에 입이 걸린듯하다는 표현은 데이브 같은 애들을 보고 하는 말인가 보다. 데이브는 내가 뮌헨에서 보고 즐기고 먹고 했던 시간들이 본인에게도 각별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는지 그 뒤로도 나의 노르웨이 생활을 챙겨주었다. 나중에는 로라보다 데이브와 훨씬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행복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브와 나는 오슬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데이브가 오슬로에 여행 겸, 나를 만나러 직접 와준 것이다. 그때는 나도 베테랑 오슬로 생활자가 되었으니, 오슬로의 유명한 키링쇼(Kringsjå) 송스반 호수(Sognsvann)에서 나의 오슬로 친구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보답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뒤로도 꾸준히 연락했다. 데이빗은 훗날 자동차 부품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따금씩 데이브는 서프라이즈 선물도 보냈다. 40년 된 애장 엽서에 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서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우리가 함께 만든 사진에 손수 편지를 적어 만든 스노볼을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데이브가 내게 이렇게 잘 해주는 것에 대해서 고마운 한편, 나의 어떤 모습이 데이브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었는지 내심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데이브는 내게 그런 쪽지를 보낸 일이 있다.



"You're one of the nicest persons 

I've ever met in my whole life!!

So funny and always smiling!!" 



내가 뭐가 재밌다고? 언제나 웃는다고? 데이브의 그 말은 너무나 낯선 말이었다. 난 그렇게 재밌지도, 더군다나 자주 웃는 사람도 아니거든. 여행이라서 그랬던 건데 너 속은거야 데이브! 아니면 우리가 만난 곳이 뮌헨이거나 오슬로여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여기선 내가 찡그릴 일이 없어.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나 한 손에는 맥주와 함께할 수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한국에서의 나는 주로 무표정일 때가 많았다.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나 밝은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방긋방긋 자주 웃는구나, 하는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차분하고 야무져보이는 겉모습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이 다가오기 어려워 하기도 했다. 성격은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이기 때문에 차갑고 사무적인 분위기도 있는 편이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웃음'으로서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이게 다 여행 때문이다. 사실은 자기가 더 잘 웃으면서도, 나처럼 자주 웃는 사람이 처음이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렇다. 다만 나는 앞으로 웃을 때마다, 아니 웃지 못할 때마다 뮌헨과 데이브를 떠올릴지 모르겠다고 예감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소한 즐거움,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그래서 더 밝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것은 여행이 내게 준 새로운 경험이었다.



Laura's couch and my bed.




그 뒤로 

더 자주 

웃기로 약속했다 


흔히들 웃으면 복이 온다고들 한다. 주어와 술어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야 크게 일리 있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내 웃는 얼굴에 반한 사람들이 그 웃는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떡도 물어다 주고 햇볕도 쐬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여행에서, 가이드북도 완벽한 계획으로 꽉 찬 엑셀 파일도 소용없는 여행 길에서, 무조건 그 쓰임새가 확실한 단 하나는 과연 무엇인가. 아시안 마켓의 찬장을 뒤지고 뒤져서 찾아낸 옥수수수염차? 글쎄, 그것도 맞다. 하지만 알겠다.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미소, 긍정적인 솔직함 같은 것들이 훨씬 먹힌다. 


사실 나는 무조건적인 긍정과, 무조건적인 밝음에는 반대하는 사람이다. 인위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라의 집에서 함께했던 두 번의 밤을 떠올릴 때에는, 밝음의 순기능을 믿을 수밖에 없어진다.  그 순간 내가 행복했다는 너무나 명확한 증거이니까.  무수한 희로애락과 때때로의 결핍 속에서도 누군가를 기분좋게 하는 내 모습은 찡그리는 얼굴이 아니라 웃는 얼굴이었다.




Remember to keep on smiling.

_Dave.


"계속 그렇게 웃어야해." 데이브는 여행이 끝난 뒤 나와 수많은 온라인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곧잘 이 문장으로 쪽지의 마지막 인사를 맺음하곤 했다. 그시절 나는, 단지 휴일에 여행을 떠나는 사소한 부지런함, 그 작은 용기 하나만으로도 얻은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가보고 싶었떤 여기가 아닌 다른 곳,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에서도 유효한 능력치는 의외로 단순한 것이었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인 능력치다.




in Oslo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