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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Couch Surfing in Europe

환상과 현실 그 사이, 유럽 생활자 특권

by Mellowee 2016. 12. 22.

Füssen 으로 가는 길


Füssen, Deutschland






환상으로의 

도피 


날씨가 한창 반짝이는 봄날, 부활절 휴가가 있는 것은 유럽애들의 복이다. 그건 내게도 복인가? 덕분에 그 봄날에 맞처서 독일 여행을 나왔다. 부활절 기간에는 학교 수업이 없다는 것을 알고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떠나온 거다. 목적지는 뮌헨, 드레스덴, 밤베르크, 그리고 베를린. 4개의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에서 4가지 개성을 가진 카우치서핑 호스트들을 만나고 올 셈이다.


마침 비행기 티켓도 편도 60 크로네 (NOK), 당시 환율로 계산하더라도 불과 11,000원 정도. 이럴 때 독일 여행을 안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평소에는 노르웨이의 열혈 생활자로 살다가, 틈만 나면 근교 유럽으로 떠난 데에는 이런 저가 항공 덕이 컸다. 


노르웨이의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하면, 저가 항공으로 떠나는 여행은 생존 본능에 의한 선택일 때가 많았다. 사실 오슬로에서는 외식하는 것이 아까워 항상 도시락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나중에야 많이 달라졌지만, 첫 학기만 하더라도 적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맛깔나게 만드는 재주가 없던 터라 도시락에는 금방 싫증이 나기도 했고. 


반면에 라이언에어(Lionair)와 같은 저가항공을 이용하면 노르웨이에서 한 끼 외식할 수 있는 돈으로 유럽 여행 왕복 티켓을 구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는 초콜릿, 각종 길거리 음식들, 심지어 한 끼의 식사들이 노르웨이에서보다 훨씬 저렴했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다만 유학생인 내게는 이 여행이 주말의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또 다른 배움의 기회여야 하는 압박감이 있긴 했다. 그래서 카우치서핑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매일 밤 타인을 만나야했고, 타인에게 나를 소개하고 교류하는 미지의 업무를 매번 개척해야 했으니 말이다. 완벽한 계획은 무용지물의 것. 풍족한 휴식은 기대불가의 영역. 다만 그 길목 길목에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이 속속들이 놓여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Füssen, Deutschland



퓌센(Füssen)과 같은 주변 도시들의 목가적인 자태를 마주할 때면, 그래서 고마워진다. 노르웨이에서는 교환학생으로서 씀씀이로나, 학업적으로나, 늘 자신의 욕망을 절제해야했고, 항시 타인 앞에서 긴장해야 했다. 학업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도, 한 명의 이방인으로 현지의 일원으로 생활하는 데에도 늘 어설펐던 제 모습이 싫었다.


다만 독일에 오니 조금 잊게 된다. 남부 도시 특유의 한적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는 노르웨이 특유의 차갑고 건조한 세련됨을 내 일이 아닌 것으로 미뤄두게 만든다. 


퓌센이야 워낙 유명한 도시. 뮌헨에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 작화에 영감을 준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자연빛 그대로 간직한 고즈넉한 교외 풍경과, 그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고성의 섬세한 자태는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꼭 한번 쯤 보고 싶어하는 중세 유럽의 잔상이기도 하다.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는 곳이니, 나 역시 뮌헨에서의 카우치서핑을 끝내고, 밤베르크로 향하는 길에 퓌센을 들러보고 싶었다. 미리 사둔 바이에른 티켓 (Bayern-Ticket)으로 기차에 무사히 탑승했다. 바이에른 티켓이란 바이에른 주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무제한 교통 탑승권이다. 바이에른 주에는 위르츠 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등이 대표적인데, 오스트리아의 소도시인 잘츠부르크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환상 

세계의

비극 


19세기, 1880년에 세워졌다는 이 성은 그 히스토리가 자태만큼 범상치 않긴 하다. 성의 주인은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 어려서부터 동화나 신화 같은 일에만 매료되어 그다지 왕이 될 재목은 아니었다고 한다. 즉위한 지 2년만에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교권 강화를 둘러싸고 관료들과 마찰을 빚게 되면서 정치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고 한다. 그러니 왕으로서 이렇다 할 체면도, 권위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도피처는 어려서 벗이 되어주었던 바그너와, 바그너의 오페라 속에 등장하는 게르만 신화였다. 게르만 신화 특유의 음울하고 복수 지향적인 내용들은 그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것일까? 스스로의 자격지심과 심약함은 엉뚱하게도 게르만족 신화 속의 몽상 세계나, 바그너 풍의 예술적 감상주의에만 몰두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바그너에 대한 무한한 총애와 특혜로 백성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결국 정치를 외면한 그는, 그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을 세우는데 여생을 받쳤고, 성 곳곳에는 바그너 오페라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장면들을 수려하게 표현하는 데 집착했다. 그게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어려서 안락하게 누렸던 사랑받는 왕자로서의 삶과, 왕으로서의 다 이루지못한 권위적인 세계를 바그너의 오페라 속 게르만 신화의 세계로 재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 자신이 집착했던 중세 건축의 화려함과 수려함은, 왕으로서 그가 채우지 못한 결핍과 욕망의 전시였을 것이다.


조금은 다른 이유겠지만 아돌프 히틀러도 바그너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좋아했다. 바그너가 표현하는 독일 민족주의와 그의 뿌리가 되는 게르만 신화의 웅장함을 마음에 들어했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그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건축물로 여겨졌다. 특히 바그너가 완성한 수려한 무대 연출법은 히틀러가 닮고 싶은 카리스마였다. 아돌프는 바그너로부터, 문학적으로, 무대 매너적으로 많은 것을 빌려왔고 대중을 압도하는 독재에 요긴하게 활용했다.  


신화에서 나타나는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나친 동경 때문에 눈 앞에 현실을 잊으려는 자와, 그 초월적인 세계를 다시 현실로 구현하려는 자. 두 사람 모두 말년에는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재밌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죽으면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폭파시켜달라고 유언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창피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만의 환상적인 세계는 오롯이 혼자만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일까? 


불손한 환상은 파국을 불러온다. 바그너에게는 시대의 비극을 야기하고, 스스로도 불운했던 두 사람을 자신과 엮는 게 씁쓸한 얘기겠지만 말이다. 흥미롭게도 지금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바이에른주의 자랑거리다. 전세계 관광객들에게는 환상적인 동화 속 세계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명소이자, 바이에른 주의 주요 수익원이 되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중세 시대 환상 문학 덕후의 얻어 걸린 업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Schloss Neuschwanstein




역사 속 어리석은 왕에게 나는 내심 동정표를 던져볼까 한다. 이렇게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모습의 도시에서는 모든 게 다 남의 얘기 같아서 말이다. 노르웨이로 돌아가서 해치워야할 레포트들도, 읽어야할 페이퍼들도 다 먼 훗날의 얘기 같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본다. 환상으로의 도피가 지나치면 자신을 갉아먹고 파괴할테니까. 지금 내게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그저 멀리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밤베르그로 떠나자




밤베르크의

술부심 


동화같은 그곳을 떠나, 이번에는 바이에른주의 또 다른 중세 소도시 밤베르크(Bamberg)로 떠난다. 독일에서 만나게 될 두번째 호스트인 바바라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밤베르크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국인 남자친구와 교제 중인 그녀를 위해, 한국 요리를 가르쳐주기로 약속했다. 


Do you know when your train arrives at Bamberg? I can give you a lift with my car, so you don't have to carry your bag to my apartment. And thank you very much for only staying 1 night, Bamberg is a beautiful city, but 1 day (and 1 night) is actually enough to see everything the city has to offer ;) _ 바바라가 보낸 쪽지 中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밤베르크 역.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지체되어 바바라를 만났다. 알고보니 바바라는 한참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내가 카우치서핑 쪽지를 보낸 세희가 맞는지 아닌지 판단이 잘 안 갔다고 한다. 그녀가 보기에 내 모습이 동양 여자애는 맞는데, 내 행색이 너무 깨끗했다나? 내 외모가 여행자(Traveler)는 여행자인데 관광객(Tourist) 같다고 했다. 


지금 내가 뮌헨 에서부터 이제 겨우 3일째 여행을 하고 있는데 아직은 깨끗해도 될 것 같지 않니? 어느새 바바라의 차를 타고, 100년도 훨씬 전에 지어진 그녀의 아파트로 이동한다. 우리는 집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근처 대학생들이 자주 간다는 펍에 들르기로 했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바이에른주의 흑맥주를 맛보는 것은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다.


"바바라!" "헤이 바바라!" "바바라~!" 그녀는 호탕한 성격만큼이나 평소에도 마당발인듯했다. 우리가 찾은 펍에 와 있는 절반이상이 그녀를 아는 친구들이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내가 카우치서퍼라는 것을 일일이 설명했다. 몇몇 친구들은 호기심에 나와 바바라의 술 자리에 합석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모두 앉은 자리에서 맥주를 하나씩 시켰다. 나도 밤베르크의 자랑, 훈제 흑맥주를 시켜보기로 했다. 맥주에서 훈제 고기 냄새가 나는 그 맥주. 하지만 내가 호기롭게 흑맥주를 시키자 점원이 걱정어린 눈빛으로 주문 받기를 망설였다.





"Are you sure? 

외국인들은 다 그 맥주 싫어한던데..."



도대체 어떤 외국인이 밤베르그에 왔던 것인지. 흑맥주에 홀딱 반해버렸다. 구운 소시지 냄새가 나는 진한 맥주가 마음에 들어서 다른애들보다 제일 먼저 잔을 비웠다. 조금 진하긴 진하다 싶었지만 500ml 한 잔 쯤이야~ 응? 마셔보니 의외로 특별한 향과 무게감이 싫지 않았다. 도대체 한국 대학생을 뭘로 보는 건지. 남는 건 체력에 호기심 뿐이라서 이런 요상한 맛의 술 정도는 낭낭한 기백으로 단숨에 마셔버릴 수 있는걸. 



싫긴요... 더 주세요...



여기 500 한 잔 더 추가요

Sehee & Barbara



술을 마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 얘기가 오고갔다. 나는 평소에 소주를 제외하고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맥주, 와인, 양주 다 좋아한다. 특히 대학생 때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때로는 실 없는 농담으로, 때로는 깊이 있는 토론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20대 초반 그 나이 즈음에는 술자리에서 배우는 눈치와 처세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게 즐겁게 술을 마시다보니 펍에서 만난 바바라의 친구가 한가지 질문을 했다.


"너는 왠지 내가 아는 한국인이랑 다른데? 

한국 애들은 술을 싫어하지 않아?"


"응 무슨 소리야? 

한국 사람들이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는데?

예로부터 흥이 많은 민족이어서 음주가무에 능했다고! 


이게 자랑은 아니지만~

주량은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아~"


경쟁심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에 괜히 발끈해서 받아치는 내게, 바바라의 친구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밤베르크 대학교의 한국인 남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파티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 한국인 남자와 그를 비롯한 아시안 학생들 말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독일의 남쪽에 자리한 관광 도시에도 한국인 유학생이 있다는 것이 솔깃했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그 남학생은 밤베르크 대학교에 수년 째 다니고 있으면서도 절대 독일 애들하고는 전혀 어울릴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거다.


"그냥 중국인들하고만 다니던데, 아니면 혼자 공부하거나.

그러려면 뭣하러 독일 학교에 다니는거야?"


"술을 싫어하나보지!"


"아니, 얘기도 안 한다니까? 친해지려면 어울려야지~!"


얘기를 듣자하니 어쩐지 비판을 넘어 비난조로 이야기가 넘어가려 하는 것에 마음이 불편해지려고 했다. 서양 문화권에 나와있는 동양 문화권 아이들의 특유의 수줍은 면이나 소수자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을 서투름이 비난 받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남학생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일단 독일에서 유학하는 그분의 속사정이야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었고, 설령 그것이 한국이 아닌 독일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목적 지향적인 연유라 할지라도 비난하긴 어려운 영역이다. 같은 입장에서 이방인 학생이 현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노르웨이에 처음 왔을 때, 교환학생 수준에 그친 완벽하지 않은 영어와 해외에 혼자 살아보는 경험적 서투름은 스스로를 소극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생활 하는 내내, 내가 새롭게 두드리고 있는 노르웨이 혹은 오슬로대학교라는 공동체에 한명의 일원으로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내게 평소에 갖지 못했던 한단계 더 수준 높은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미션을 다그치곤 했다.



"야. 너가 만약에 한국에 혼자 공부하러와봐. 

 현지 애들이랑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너 한국오면 가만히 있기만 해도 팝스타처럼 금방 인기 있을 거 같냥?"



실제로 더 개방적이고, 더 솔직하며, 더 주체적인 서양애들에 비해서 적당히 겸손하고 적당히 얌전한 아시아 아이들은 공부나 하는 것이 속편했을지 모를 일이다.  


대신 나는 나 스스로 역할을 찾아냈다. 특별히 파티에서 사교의 여왕이 될 자신도 없었고, 말 재간으로 상대방을 꿈뻑 죽게할 영어 실력도 없었을 때니, 나만의 대체 불가한 역할을 만들어 현지 아이들과 동등한 입장이 되어보고 싶었다.

 

평소 포토샵을 다룰 줄 알고 영상 편집을 해본 경험을 활용해서, 국제 학생 잡지 출판부의 디자인 파트에 가입하거나 오슬로 학교 방송국의 취재 기자로 활동했던 것은 다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작업한 잡지의 표지, 내가 에디팅한 기사의 콘텐츠로 다른 외국인 아이들과 동등하게 교류할 수 있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고, 더 좋아졌으면 하는 것은 더 좋아져야한다고 내 의견을 그나마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매번 힘든 일이었다. 영어로 내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현지 생활에 익숙지 못하다는 느낌은 동등한 입장의 노르웨이 애들 앞에서 소극적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제야,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만났던 소극적이고 불성실했던 중국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밤베르크 대학교에 있는 그 학생이 독일 아이들이 주최하는 파티를 일부러 피하거나 독일 아이들과의 대화에 의도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은 컸겠지만 그것을 타파하고 자기 극복을 하는 게 어느새 불편하고 쉽지만은 않았을테고, 종국에는 그러는 스트레스를 버리는 대신 본인에게 필요한 공부에 집중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근데 나도 알아.

 그 낯설음을 대하는 어려움과

 다수에게 나 자신을 소개하는 어려움...


 그런 것들하고 한 번 싸워보러 교환학생도 오는 거지.

 이런 여행도 하는 거고."




유럽

생활자

특권 


누군가는 환상을 포기한다. 현실에서 자신을 압박하는 것들로부터 탈출해야하니까. 또 누군가는 환상으로 도피한다. 현실에서 자신을 패배시키는 것들을 망각하고 싶으니까. 나는 둘 다 거부하겠다. 매번 어렵고 숱한 열패감과 한계를 절감하고 깨지면서도 절대 환상 속으로 도피하지 않을 거고, 내가 동경하는 환상을 포기하지도 않을 거다.


술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적당히 취한 채로 바바라의 집으로 이동했다. 바바라가 베일리스라는 술을 활용해서 깔루아 밀크를 제조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깔루아 밀크는 원래 깔루아가 들어가야 하지만 베일리스를 대신 넣어도 맛이 좋다. 펍에서 만난 친구들이 반쯤 취한 채로 줄줄이 소세지처럼 우리 집으로 따라왔다. 바바라가 키우는 귀여운 햄스터 한마리가 우리의 술 냄새를 맡은 듯 제 우리에서 빙글빙글 발길질을 해댔다. 


유쾌하고 웃음 많은 아이들과 있으려니 술이 절로 들어갔다. 벌써 바바라 집에서만 베일리스 한 병을 다 비웠다. 여기 오기 전에도 흑맥주 두 잔에 칵테일 두 잔씩을 비우고 왔는데 말이다. 나는 마침 머리가 빙글 빙글 돌려는 참이다. 애들은 멀쩡한 것을 보니 진짜 밤베르크에서 술부심 부릴만 하다.


흑맥주 한 잔에, 깔루아 밀크 한 잔에 취한 채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처럼 어울리는 아이들. 하지만, 이 환상도 내일이면 숙취와 함께 깨어날 일인 것을 안다. 주말에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유럽 생활자로 사는 것. 그것의 특권은 이런 것인지도 몰랐다. 환상 가득했던 이국의 풍경으로 뛰어들 되, 그 낯선 환경에서 내가 어떤 정체성으의 나로서 서있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테스트해 보는 것 말이다.


거기에는 술 한 잔으로 해결 가능한 어떤 시끌벅적한 여행이 있다. 술 한 잔으로는 해결 못하는 어떤 지리멸렬한 일상도 있다. 늘 스펙타클 하기만 한 여행은 이루기 어렵다. 성공적이기만 한 교환학생 생활도 쉽지 않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모두에게 환영받는 나 자신으로 서있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그 때의 어린 나는 삶이 늘 그럴 것이라고 감히 예상했다.  




한국 요리 해주기로 했는데...


언니 술냄새 좋지~?


Babara's couch and my 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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